[취재수첩] 일방통행식 정보유출 수습책

이지훈 금융부 기자 lizi@hankyung.com
지난 4일 금융감독원이 8개 신용카드회사 사장들을 불러모았다. 카드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후속 조치 차원에서 1000억원대의 기금 조성을 서두를 것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보안에 취약한 가맹점의 기존 결제단말기를 IC(집적회로)단말기로 업그레이드하는 비용을 카드사들에 떠맡긴 것이다.

단말기 전환 문제는 사실 수년째 논쟁이 되고 있는 이슈다. 전환의 필요성에는 다들 동의하지만 수반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다. 정부는 자금력이 있는 카드회사들이 교체비용을 대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카드회사들은 혼자만 낼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가맹점을 관리하는 중개업체인 밴(VAN)사와 가맹점들도 단말기 교체로 이득을 보기 때문에 비용을 같이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소신과 달리 이날 회의에 참석한 카드사 수장들은 한마디의 반론도 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당국의 요구에 “잘 알겠습니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고객 정보유출의 ‘원죄’를 의식해서일 것이다. 한 참석자는 “누가 봐도 무리한 요구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이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카드사 사장들은 규제산업을 영위하면서 감독당국의 눈 밖에 나서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묘한 시점에 당국의 비위를 맞추는 듯한 행태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혹 돈을 좀 내는 걸로 카드 정보유출 사태 후폭풍을 무마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면 큰 착각이다. 카드회사들이 머리를 조아려야 할 상대는 당국자가 아니라 성난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당국의 압박도 상식 밖이긴 마찬가지다. 정보 유출사태 재발을 막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곤궁한 입장에 처한 카드사를 압박해 현안을 마무리하고 싶은 유혹도 클 것이다.

그래도 밀어붙이기식 해결책은 아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업계와의 신뢰를 해쳐 더 큰 화를 부르는 단초가 될 뿐이다. 업계 한 고위관계자는 “만만한 카드사들을 동원해 손쉽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관료적 발상”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금융사들은 굴복시킬 대상이 아니라 시장 발전을 위해 동행해야 할 파트너다.

이지훈 금융부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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