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괴물'로 변신하는 애플·노키아

한때는 휴대폰 혁신 이끌었지만…시장포화하자 특허전쟁 주력

가장 공격 많이 받은 애플, 경쟁사 소송에도 적극적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다. 요즘은 정보통신업계에서 인용된다. ‘특허괴물’로 불리는 특허관리전문회사(NPE·직접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지 않고 특허 소송 및 관리만으로 돈을 버는 업체)로부터 가장 많은 공격을 받은 애플이 스스로 특허괴물로 변신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인수한 노키아도 심상치 않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재기가 힘들 것으로 판단한 노키아가 특허괴물로 변신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고성장을 거듭하던 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자 한때 세계 휴대폰 왕좌를 거머쥐었던 노키아와 스마트폰 혁신을 주도했던 애플이 빠르게 특허괴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된 애플

“불필요한 특허소송을 줄여달라고 요구해 온 애플이 가장 큰 규모의 특허소송을 벌이고 있다.” 미국 의회전문매체 더 힐은 지난주 ‘애플, 특허 개혁가인가 위선자인가(Apple, Patent reformer or hypocrite)’란 기고문을 통해 이같이 보도했다. 더 힐은 이어 “애플이 삼성전자와 2차 소송에서 요구한 대당 40달러의 로열티는 미국 특허 시스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애플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모바일 기기를 이용하는 소비자들마저 피해를 보게 될 것이란 얘기다.

애플의 최근 행보는 특허괴물과 판박이다. 애플은 2011년 MS 에릭슨 소니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한 뒤 캐나다 통신장비업체 노텔의 특허를 45억달러에 매입해 록스타비드코라는 이름의 NPE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11월 삼성전자 LG전자 HTC 구글 화웨이 등에 특허소송을 제기했다.

2010년에도 디지튜드이노베이션이라는 NPE에 일부 특허권을 양도한 뒤 삼성전자 LG전자 HTC 노키아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애플이 NPE를 활용해 특허소송에 나선 이유는 맞소송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NPE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NPE를 내세워 특허소송을 진행하면 맞소송을 당할 위험이 적고 상대방을 더 강력하게 압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애플이 삼성전자에 요구한 로열티도 특허괴물을 연상시킨다. 일단 과도한 로열티를 요구한 뒤 협상을 통해 조정하는 방식, NPE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노키아의 막다른 선택노키아도 최근 중국의 한 스마트폰 제조업체에 자사의 특허료를 20배 인상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키아는 작년 9월 MS에 휴대폰 제조사업부를 72억달러에 팔았지만 스마트폰 관련 특허는 양도하지 않았다. 스마트폰 제조업에서 손을 떼고 특허괴물로 남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노키아는 휴대폰사업부 매각 이후 특허권의 적극적인 행사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지난 2월에는 HTC에 특허소송을 제기해 거액을 받아내기도 했다.

애플과 노키아가 특허괴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은 성숙기에 접어든 스마트폰 시장의 환경과 연관이 깊다. 스마트폰 판매만으론 더 이상 주주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킬 수 없게 되자 특허를 통해 수익성을 높이려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스마트폰 시장이 애플과 삼성의 양강체제로 굳어지고 있는 것도 노키아의 변신을 재촉한 요인이다. 재기를 꿈꾸기 힘들어진 노키아가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노키아 블랙베리 같은 스마트폰 업계 후발주자들은 앞으로 더욱 뒤처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급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다다라 성장세가 둔화된 데다 최신 고성능 스마트폰엔 물리학·열역학 기술이 들어가 개발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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