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했던 키프로스 구제금융 협상…극적 타결까지

키프로스 대통령, '사퇴 배수진'으로 '트로이카' 압박
은행예금자, 부담금은 피했지만 손실 40% 떠안아

최근 국제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키프로스 구제금융 협상이 데드라인을 불과 수시간 남겨놓고 막판 극적으로 타결됐다.지중해의 작은 섬나라 키프로스 사태는 발발 초기만 해도 경제규모가 유럽연합(EU)의 0.2%에 불과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구제금융 지원 사상 유례가 없는 은행 예금에 부담금(levy)을 부과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키프로스에 막대한 자금을 넣은 러시아가 반발하면서 지정학적 이슈로 번지자 세계가 주목했다.

예금자들에 대한 부담금 부과안이 키프로스 의회에서 부결되자 유럽중앙은행(ECB)은 키프로스의 긴급유동성지원(ELA)를 25일까지만 제공하겠다며 마감시한을 설정해 압박했다.급기야 니코스 아나스티아데스 키프로스 대통령은 '플랜B'를 마련해 24일(현지시간) 자정까지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ECB 등 '트로이카'와 '마라톤협상'을 벌이면서 설득에 나섰다.

키프로스와 트로이카가 결국 잠정 합의하자 자정이 넘도록 밤샘 회의를 하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무장관들도 이를 승인해 키프로스 국가부도 사태는 겨우 면하게 됐다.

◇키프로스 대통령 '사퇴 배수진'으로 트로이카 압박
아나스티아데스 대통령과 마할리스 사리스 재무장관은 EU와 ECB가 키프로스에 요구한 자구책 마련 시한 마감을 하루 앞둔 24일 키프로스 정부와 의회가 합의한 '플랜 B'를 들고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로 날아갔다.키프로스 정부 대표들은 이날 오후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집행위원장,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등을 차례로 만나 설득에 나섰다.

키프로스의 '플랜B'로는 35억유로 정도만 조달할 수 있어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이 재정확충 규모로 요구한 58억유로에 못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부결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아나스티아데스 대통령은 트로이카와 협상 과정에서 대통령직 사퇴 배수진까지 치면서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키프로스뉴스통신은 협상 관계자를 인용해 아나스티아데스 대통령이 "내가 사임하기를 원하는 것이냐"며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협상 과정에서 "나는 한 가지 제안만 할 것이다.

(트로이카가) 이 안을 거부한다면 다른 안을 내겠지만 그것은 이 안과 같을 것"이라며 물러설 곳이 없음을 강조했다.

결국 키프로스와 트로이카의 협상은 이날 자정에야 잠정 합의에 도달했고 아나스티아데스 대통령은 트위터로 이 소식을 알렸다.

키프로스 구제금융안을 최종 승인하는 유로존 재무장관 회담은 4시간이나 지연되는 우여곡절 끝에 24일 밤부터 시작됐으며 잠정 합의가 전해진 지 1시간이 지난 25일(현지시간) 오전 1시에 승인을 결정해 키프로스는 국가부도 사태를 면하게 됐다.

◇'예금 부담금' 원안 부결에 '플랜B'로 타결
키프로스는 트로이카로부터 구제금융 100억유로를 받는 조건으로 58억유로를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지난 16일 유로존 재무장관들이 합의한 키프로스의 구제금융 지원 조건은 은행예금에 부과금을 매기는 구제금융 사상 유례없는 방안으로 알려지면서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국민의 예금에 사실상 세금을 6.75~9.9%를 부과하는 방안이 공개되자 '뱅크런'이 일어나는 등 키프로스는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키프로스 은행은 영업중지에 들어갔고 아나스티아데스 대통령도 의회 표결에 앞서 "구제금융안이 불공정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키프로스 정부와 의회는 국민 반발에 2만유로 미만의 예금에 대해서는 부과금을 면제하는 안을 마련해 지난 19일 표결에 들어갔지만 여당으로부터 1표의 찬성도 얻지 못하고 부결됐다.

이에 따라 사리스 재무장관은 러시아를 찾아 기존 차관의 만기를 연장하고 신규차관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쏟기도 했다.

키프로스에 막대한 규모로 예금한 러시아는 예금 부과금에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EU에 공동협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구제금융안 마련이 지지부진하자 ECB는 키프로스의 긴급유동성지원(ELA)를 25일까지만 제공하겠다며 마감시한을 설정해 키프로스 압박에 들어갔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키프로스가 58억 유로를 확보하지 못하면 아예 100억유로의 구제금융 지원 자체를 취소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키프로스 정부는 원안을 수정한 '플랜B' 마련에 착수했다.

키프로스 의회는 22일 긴급 채권 발행을 위한 통합기금(solidarity fund)을 창설하고 2대 은행인 라이키은행의 부실자산을 '배드뱅크'로 옮겨 청산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플랜B'를 통과시켰다.

결국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25일 '플랜B'를 승인해 예금자들은 부과금을 면제받게 됐다.

하지만 외신에 따르면 '플랜B'의 핵심 내용은 라이키은행 예금 가운데 예금자보호 한도인 10만유로 이상에 대해서는 손실로 처리하는 '헤어컷' 조항이 포함돼 고액 예금자의 손실은 불가피하다.

헤어컷 비율은 40%로 알려졌다.또 라이키은행은 '굿뱅크'와 '배드뱅크'로 나누고 주주와 채권단, 예금자보호 초과 예금자가 공동으로 손실을 떠안고 배드뱅크를 청산하며 굿뱅크는 키프러스은행과 합병하게 된다.

(서울연합뉴스) 김준억 기자 justdus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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