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아이폰 상륙 3개월

오만 가지 제품을 만든다는 3M의 실제 제품 종류는 우연인지 몰라도 거의 '5만 가지'다. 애플의 아이폰 앱스토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5만 가지를 넘어섰다. 사람은 하루에 오만 가지 생각을 다 한다는데 스마트폰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나 콘텐츠가 그렇게 된 것이다.

KT가 애플 아이폰을 국내에 출시한 지 3개월 가까이 돼 간다. 아이폰의 구매 대수를 간단히 30만으로만 잡아도 벌써 휴대폰 사용인구 100명 중 한 명꼴로 늘어난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지는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 더구나 아이폰을 비롯한 스마트폰이 몰고 올 생활이나 모바일 비즈니스의 변화는 더욱 그렇다. 당장 굳건하게만 보이던 기업들이 당황하는 모습이다. 국내 굴지의 IT제조업체 회장은 "전자팀에 속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정말 그렇다면 앞으로 기업 내부에 큰 쇄신이 몰아칠지도 모를 일이다. 기업들의 관계도 미묘해지고 있다. 삼성과 KT의 관계가 껄끄러워졌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SK텔레콤이 주도하던 이동통신시장의 고착화된 경쟁판도도 달라질 조짐이다. 포털도 강건너 불구경할 처지가 아니게 돼 버렸다. 모바일로 가면 네이버의 지배적 위치도 더 이상 장담하기 어렵다. 3개월 전과는 엄청나게 다른 풍경이다.

당황하는 것은 정부도 마찬가지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며 서둘러 대책을 내놨다. 투자도 크게 늘리겠다고 하고, 사람도 양성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나도 판에 박힌 소리만 하는 정부에 사람들은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분위기다. 뒷북을 치거나 물타기를 하는 것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럴 만도 하다. 기피하는 3D업종에 꿈도 없다(Dreamless)고 해서 4D업종이 됐다는 소프트웨어. 지금 소프트웨어 개발자들로 하여금 "소프트웨어를 할 맛"을 나게 해 준건 지식경제부, 방송통신위원회(과거 정보통신부까지 포함),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정부도 아니고,대기업도 아니다. 애플의 아이폰이 그렇게 만들었다. 그것도 20여년 동안 안 되던 것을 단 3개월 만에.이찬진 드림위즈 대표와 안철수 KAIST 석좌교수는 척박한 땅에서도 소프트웨어를 일궈낸 사람들이다. 아이폰 전도사로 불리며 오해도 받았다는 이찬진씨는 지난 22일 "누가 스마트폰 승자가 될 것인가"란 주제로 열린 공학한림원 CEO포럼에서 스마트폰의 의미를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그는 승자는 '고객'이고, 그걸 아는 기업이 이긴다고 했다. 이찬진씨는 애플을 흉내내고 따라가는 경쟁은 하지 말라는 충고도 했다. 아이폰의 문제점이 분명히 있고, 스마트폰 시장이 동질화된 것도 아니고 보면 차별화된 방법으로 다른 시장을 찾아 보라는 얘기다.

안철수씨는 스마트폰을 비즈니스 모델 관점에서 보라고 말한다. 단순히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정부가 지원책을 들고 나오자 왜곡된 시장을 바로잡을 공정한 경쟁에 눈을 돌리라고 말하고, 한국에서도 스티브 잡스를 키우겠다고 하자 스티브 잡스는 한국에도 있지만 다만 성공할 수 없는게 문제라고 꼬집는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말대로 처와 자식들 외엔 모든 걸 다시 바꿔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은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애플도,구글도 무서울 게 없다고 자신한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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