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준의 한국정치 미국정치] (11) 노벨평화상 짊어진 오바마

1901년에 생긴 노벨상 중 노벨평화상은 노르웨이의 노벨위원회가 그 심사를 맡고 있다. 19세기 유럽에서 노르웨이가 누렸던 가장 공정한 국제 중재자라는 명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노벨평화상 선정이 정치적으로 변질돼 간다는 비난이 일기 시작했다.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와 베트콩의 레 둑 토를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던 1973년이 대표적인 사례다. 노벨위원회는 베트남 전쟁 종식을 위한 두 사람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지만 레 둑 토는 훗날 베트남에 평화가 이뤄졌을 때 받겠다며 평화상을 사양했다. 결국 평화는 오지 않았고 전쟁으로 인한 수 많은 인명 피해만 남겼다. 1994년에는 팔레스타인의 야세르 아라파트,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 전 이스라엘 외무장관 페레스가 공동 수상자로 발표됐다. "평화와 협조를 이끌어낸 역사적 공헌"이 이유였다. 하지만 노벨평화상 수상식이 끝난 지 불과 몇 달 뒤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군인 납치 사건이 발생하면서 평화협상은 무효화되고 평화는 깨졌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라는 발표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고 미국의 여론을 또 한번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노벨상 역사상 가장 많은 205명의 후보자 중에는 세계 평화와 인권 확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훌륭한 세계적 인물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제 임기 시작 9개월밖에 안 된 대통령을 선택한 이유가 더 궁금하다. 더욱이 노벨평화상 후보자 추천 마감일은 지난 2월1일이었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지 불과 2주 후다.

오죽하면 부시 행정부에서 유엔대사를 지낸 존 볼튼은 "오바마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을 반납하고 3~4년 후에 다시 검토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을까. "노벨상은 그 업적을 평가하는 것이지 노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일부 보수파는 "지난 9개월 동안 오바마가 한 것이라고는 그럴 듯한 연설뿐 실적은 하나도 없다. 이번 노벨평화상 결정은 유럽에서 인기가 없었던 부시 전 대통령에 대한 노골적이고 성급한 보복 행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긍정적 평가도 만만치 않다. "노벨상 수상이 이란,러시아,북한의 강경파 지도자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만은 확실하며 이는 큰 성과"라는 것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시켰고,동맹 관계를 강화시켰으며,노벨상은 그의 비전과 가치관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찬사를 보냈다.

오바마 대통령이 받은 노벨평화상은 오바마의 개인적인 영광이며 국가적 차원에서도 자랑스러운 것만은 틀림없다. 하지만 어딘가 개운치 않다. 대한민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때 여러가지로 뒷말이 나왔지만 평화상 수상을 압도적으로 환영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혹독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막상 오바마 대통령이 상을 받을 때는 많은 국민들이 찬사를 보낼 것이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석연치 않을 것이다. 파키스탄에 추가 병력을 보내야 하는 오바마의 입장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회에 노르웨이 전 총리 재그랜드가 이끄는 현 노벨수상위원회는 해산하고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비정치적 인사들로 재구성돼야 한다.

/전 미 연방하원의원 · 한국경제신문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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