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車가 생존 키워드"…도요타·벤츠·BMW 자존심 접다

경제위기로 싸고 연비좋은 소형차가 인기
신흥국 시장 확대도 요인…1천만원대 이하로 승부
저가차가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생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수익성이 낮고 브랜드 이미지를 갉아먹는다는 이유로 관심 밖 대상이었던 '싼 차'가 금융위기 이후 급속히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인도 타타자동차를 필두로 한 신흥국 저가차 업체들은 무서운 속도로 글로벌 영토를 확장하고 있으며,싸구려 이미지를 금기시했던 럭셔리카업체들마저 콧대를 낮추고 저가차 시장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선진 자동차업체의 가세로 세계 저가차 시장 규모가 크게 확대되고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싼 차'로 신흥국 중산층 공략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최근 1만달러 이하의 저가차를 '도요타' '렉서스' '사이언'에 이은 네 번째 공식 브랜드로 론칭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브랜드 이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도요타는 또 경차 전문업체인 다이하쓰와 공동으로 100만엔(약 1300만원) 이하의 저가차를 개발,내년부터 인도 브라질 중국 시장에서 판매하기로 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중국 상하이GM울링의 경소형차 기술을 활용해 4000~5000달러대의 초저가차를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고,현대자동차는 3년 내 인도 남부 첸나이 공장에서 신흥시장 공략을 위한 5000달러 안팎의 초저가차를 생산하기로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프리미엄 이미지 심기에 혈안이 됐던 글로벌 차업계가 저가차로 눈을 돌린 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 신흥국 중산층 지갑을 열기 위해서다. 중국에서는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는 연소득 5만위안(약 900만원) 이상 중산층이 2005년 3492만 세대에서 2010년 7305만 세대로 급증할 전망이다. 인도 역시 연간 20만루피(500만원) 이상을 버는 중산층이 2002년 1155만 세대에서 내년엔 3225만 세대로 3배 가까이 늘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위기로 저렴한 차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기후변화 대응으로 연비 좋은 소형차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고급차에 비해 수익성이 낮았던 저가차는 돈이 되는 사업으로 바뀌었다. 2000달러짜리 세계 최저가차 '나노'를 내놓은 타타자동차는 세계 저가차 시장을 리드하고 있고,글로벌 업체 중 유일하게 저가차를 판매해온 르노의 '로간'(7000달러대)은 2015년 판매가 31만대에 달할 전망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AT커니에 따르면 2500~5000달러짜리 초저가차 시장 규모는 올해 260만대(점유율 4.5%)에서 2015년 710만대(8.2%)로 3배 가까이 뛸 것으로 보인다. 1만달러 이하 저가차를 포함한 점유율은 지난해 이미 11%를 넘어섰다.

◆럭셔리카 업계도 저가차 러시

럭셔리카 업체들도 잇따라 저가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독일 한델스블라트는 최근 '다임러와 BMW의 사랑놀음'이라는 기사에서 "독일 럭셔리카 업계가 프랑스 소형차 업체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벤츠를 생산하는 다임러는 자사의 소형차 브랜드인 '스마트' 후속 모델을 르노와 함께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신형 소형차인 '베이비 벤츠' 모델들을 르노와 함께 만든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BMW는 푸조 · 시트로앵과 제휴,소형차 브랜드인 '미니'를 생산하는 연산 24만대 규모 영국 공장을 푸조와 공유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푸조 측은 "푸조는 소형차 경쟁력을 갖췄고,BMW는 중대형차에 강점이 있다"며 "우리의 경쟁 상대는 폭스바겐 오펠 피아트이지 BMW가 아니다"고 밝혔다.

다임러와 BMW의 이 같은 행보는 최근 독일 대중차 브랜드인 폭스바겐이 럭셔리카의 대명사 격인 포르쉐와 합병을 통해 소형차에서 최고급차까지 라인업을 확장한 것에 대한 견제의 의미도 담겨 있다. ◆대량생산 · 생산비 절감이 관건

저가차가 황금알을 낳기 위해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전문가들은 생산 및 개발비가 많이 드는 자동차 산업에서 저가차로 승부를 보려면 규모의 경제를 통한 대량생산과 비용절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도 태국 중국 등 생산 현지화와 신흥국 로컬 저가차 업체와의 기술제휴,대량생산을 통한 선점 효과,기존 브랜드 이미지 저하를 막기 위한 독립 브랜드화 등이 성공의 열쇠로 꼽힌다.

르노가 인도 오토바이업체인 바자즈와 공동으로 3000달러대의 초저가차를 개발키로 한 것이나 닛산이 바자즈와 합작회사를 설립해 내년부터 30만엔대의 초저가차를 출시하려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도요타는 8000달러대 저가차를 연간 50만대 이상 생산해 초기 물량을 확보하고 태국 중국 등 기존 생산거점을 활용키로 했다.

김미희/김동욱 기자 iciic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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