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훈련하듯…치밀한 日기업 신종플루 매뉴얼

'대유행 대비 BCP' 마련
대규모 결근‥금융마비 등 가정
전염병·재해·테러 리스크 관리

"신종 플루가 일본 전역에 퍼져 수백만명이 감염됐다. 회사 직원 절반이 결근했다. 협력업체들은 줄줄이 업무를 중단했고,주거래 은행마저 문을 닫았다. 트럭 화물기사들도 못 나오고 신칸센마저 운행을 멈췄다. 생산도 거래도 물류도 몽땅 막혀버렸다. 자,당신이 사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

일본 후생노동성이 각 기업에 전달한 '사업자 및 현장 근로자의 신종 플루 대책 가이드라인'에 의거해 최근 작성한 가상 시나리오다. 2007년 조류 인플루엔자(AI) 유행 당시 처음 작성된 뒤 업데이트가 계속 진행 중인 이 가이드라인에선 "전체 사원 중 40% 이상이 출근하지 못하고 심할 경우 회사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는 상황을 반드시 가정해야 한다"는 필수조건이 포함돼 있다.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최신호(8월31일자)에서 신종 플루 팬데믹(대유행)에 따른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본의 각 기업들이 시행 중인 'BCP(Business Continuity Plan,업무지속계획)'를 소개했다. BCP란 자연재해나 테러 등 예상치 못한 각종 재난 상황으로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비상 가동되는 위험방지대책을 가리킨다. 일종의 리스크 관리를 겨냥한 '매뉴얼 경영'이다. 지진과 폭우 등 대형 자연재해가 잦은 일본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BCP의 중요성이 부각돼왔다. 신종 플루에 대해서도 대기업에서 자영업체에 이르기까지 대다수 회사들이 업무 배분과 대체인력 투입 등 상세한 BCP를 마련해두고 있다.

의료검사기기업체인 시스멕스는 '기계수리 및 보수'와 '각 병원에서 꼭 있어야 할 시약 공급' 그리고 '콜센터 운영'을 신종 플루 확대기의 최우선 업무로 정했다. 신규 고객사 유치와 같은 영업 업무는 뒤로 미뤄뒀다.

신종 플루가 본격 확산되기 전에 전국 각 지점에서 미리 최우선 업무에 속한 직원들 중 최소 인원만 남기고 나머지는 자택에 대기시킨다. 만일 해당 업무 직원이 신종 플루에 감염되면 대기 인원들이 교대로 출근하며 대체 근무를 한다. 한 지점의 직원 모두 감염됐을 경우엔 인근 지점에서 보충 업무를 돕는다. 히타치제작소의 경우 업무 중요도에 따라 사업 부문을 '사회기능 유지사업'과 '우선사업','기본사업' 등 3가지로 분류했다. 사회기능 유지사업에는 공공교통과 전력 공급 등 사회 인프라 유지에 없어선 안 될 가장 중요한 사업이 속해 있으며,신종 플루 유행 최절정기에도 중단되지 않는다.

우선사업은 보존 기간이 짧은 제품이거나 신속한 처리가 필요한 서비스 등에 한해 일부 실시되는 사업이며,기본업무는 당장은 업무를 멈춰도 별 이상이 없어 신종 플루 대유행시 전면 중단되는 부문이다.

신종 플루에 취약한 청소년들이 다니는 학원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 중부지역에서 초 · 중 · 고등학생 6000여명을 대상으로 51개 학원 체인을 운영하는 대형 학원업체 가이린주쿠는 신종 플루로 전체 직원 및 강사 300명 중 75명이 결근하고,전체 학생 중 4분의 1인 1500명이 못 나올 경우 학원 문을 닫고 가정학습 체제로 전환한다. 감염되지 않은 강사들은 미리 준비해둔 자습용 교재를 각 집마다 돌아다니며 나눠주고 전화와 팩스로 학생들을 지도한다. 이 학원의 하야시 아키오 원장은 "사전에 이런 대책을 만들지 않으면 학원이 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닛케이비즈니스는 이 같은 BCP를 구축하는 데는 보통 6개월~1년 이상 걸리고 평상시에도 수차례 훈련이 필요하며,BCP 유무에 따라 기업의 신뢰도도 큰 차이를 보인다고 전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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