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전된 기술없이 설계만 변경…'특허' 어림없다

특허심판원, 올해 거절불복 심판비율 77%
삼성전자는 2006년 11월 '음악의 무드를 이용한 사진 추천 방법'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다. 멀티미디어를 이용해 음악을 들을 때 배경화면으로 분위기에 맞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내보내 음악과 함께 감상토록 해주는 기술로,MP3플레이어 등 신제품에 적용될 계획이었다. 특허청은 그러나 국내 · 외 기술개발 사례를 조사한 결과 이 기술이 일본에서 불과 3개월 전인 2006년 8월 공고된 '음악 콘텐츠 분류 방법'과 유사하다는 점을 확인하고 특허등록을 거절했다. 삼성전자는 이에 불복심판을 제기했지만 심판원은 지난 3일 특허청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전자는 특허침해소송 피소 가능성을 우려해 해당 기술을 상용화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이 특허를 출원했다 거절당해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패소하면 특허를 등록하지 못하고 설사 이겨도 소송 기간에는 특허권을 행사하지 못하는데다,소송비용도 치러야 해 기업들의 치밀한 사전 특허출원전략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22일 특허심판원에 따르면 올 들어 5월까지 청구된 특허심판 6420건(잠정치) 가운데 특허 거절에 불복해 낸 심판(거절결정불복심판)은 4934건으로 76.9%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거절결정불복심판 비율(74.7%)보다 2.2%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심판원에 따르면 거절결정은 대부분 앞서 개발된 기술(선행기술)에 비해 진보성이 없다는 이유로 나온다. 기술의 내용은 다소 달라도 기존 기술을 약간 설계 변경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LG전자는 냉장고 내 서리를 없애주는 '제상장치'를 개발해 2007년 출원했다가 거절당하자 심판을 청구했다. 심판원은 이에 지난 5월 "2001년에 이미 유사기술이 나왔다"며 기각결정했다. LG전자는 "기존 기술은 히터열의 전도에 의해 제상작용을 하지만 LG기술은 대류 방식"이라고 주장했지만, 심판원은 "기존 기술도 전도와 함께 대류가 이용된다"고 밝혔다.

외국 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벡트릭스사는 2003년 '충전시스템이 내장된 전기스쿠터' 특허를 한국에 출원했다가 지난해 거절당하자 불복심판을 냈다. 심판원은 그러나 "적용 대상이 자동차에서 스쿠터로 달라졌을 뿐 기존 전기자동차 기술과 유사하다"며 기각했다. 일부 기술은 심판 과정에서 심사 결과와는 달리 특허등록 결정을 받기도 한다. 개인인 민모씨는 지난해 '교사가 학생의 이동통신단말기 사용을 제한하는 학생 지도 시스템'을 출원했다. 교사가 학생의 휴대폰 사용을 적발하면 학부모 단말기에 해당 사항을 통보,동의를 받아 이동통신사 서버로 학생의 휴대폰 사용 제한을 요청하는 시스템이다. 특허청은 이에 "기존 기술로부터 쉽게 고안해낼 수 있는 기술"이라며 등록거절했지만 심판 과정에서 진보성을 인정받아 지난달 등록받았다. 그러나 애초 거절결정으로 7개월가량 늦어진 등록이었다.

특허심판원은 이처럼 특허 거절결정에 대한 소송이 증가하자 거절을 받으면 심판청구 대신 재심사를 할 수 있는 '재심사청구' 제도를 지난 1일 도입했다. 그러나 이는 지난 1일 이후 출원되는 특허에 한정되기 때문에 이전에 출원했다가 거절된 특허는 심판을 거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변리사 비용만 수백만원에 이른다. 특허청 관계자는 "특허를 거절당하면 소송이나 재심사 비용도 문제지만 연구개발 자체가 헛될 수 있다"며 "선행기술 조사를 철저히 한 후 기술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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