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파리의 글로벌 IT이야기] 마이크로소프트, 결국 위키피디아에 무릎 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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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아시죠? 세계 최고(最古) · 최고(最高)의 백과사전입니다. 한 질이 21권이나 되지요. 1768년 영국에서 첫 판을 찍었으니까 나이가 240살쯤 됩니다. 그동안 15판까지 나왔고 전문가 4400여명이 편집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서가에 브리태니커 한 질 꽂아두면 폼이 났습니다. 요즘은 어떻습니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브리태니커를 한방에 날려버린 게 마이크로소프트(MS) '엔카타(Encarta)'입니다. MS는 펑크&웨그널스로부터 백과사전을 인수해 1993년 엔카타를 발행했습니다. 책이 아니라 CD-ROM으로 내놓았습니다. 이걸 컴퓨터에 저장해놓고 편리하게 찾아볼 수 있게 되면서 브리태니커는 잊혀지기 시작했죠.웹으로도 서비스를 했습니다. MS는 이후에 백과사전 2개를 사들여 엔카타를 보강했습니다. 하지만 엔카타 제국은 16년 만에 끝나고 말았습니다. 2001년에 등장한 위키피디아(Wikipedia)에 밀려 비실대더니 결국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MS는 최근 엔카타를 포기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엔카타 생산은 6월까지,웹 서비스는 10월(일본은 12월)까지만 하겠답니다. "요즘에는 소비자들이 정보를 다른 방식으로 찾는다"는 게 이유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위키피디아에 밀려 손을 든 것이죠.

엔카타와 위키피디아는 뭐가 다를까요? 엔카타는 브리태니커의 디지털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쓴 글을 편집했다는 점에서 브리태니커와 다를 게 없습니다. 위키피디아는 완전히 다릅니다. '집단지성(wisdom of crowds)'으로 만듭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잘 아는 분야에 대해 글을 쓰고 고칠 수 있습니다. 현재 253개 언어로 1000만건의 글이 올려졌다고 합니다.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겠죠.아마추어라도 아무나 글을 쓰고 고칠 수 있다면 그 정보를 믿을 수 있겠나? 엉터리가 많지 않을까? 그런 면이 있습니다. 위키피디아는 전문가 수천명이 아니라 전문가 및 아마추어 수십만,수백만명이 참여해서 만듭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걸러지지 않아 잘못된 정보가 실리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엉터리를 없애는 것 역시 집단지성의 몫입니다. 중요한 것은 추세입니다. 위키피디아는 이미 선순환 구조로 가고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사이트의 트래픽은 세계 톱5에 들 정도로 높습니다. 백과사전 검색점유율은 97%나 된다고 합니다. 저 역시 뭔가 궁금할 때 맨먼저 위키피디아를 뒤집니다. 저는 위키피디아를 97%쯤 믿습니다. 위키피디아 재단 측에서 점차 전문가 확인 과정을 강화한다고 하니 신뢰도가 더욱 높아질 것 같습니다.

위키피디아가 고집하는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중립성(neutral point of view)'입니다. 이념적으로 편향된 글은 철저히 배제한다고 합니다. 각자가 자기 입장에서 글을 올린다면 왜곡되기 십상이겠죠.위키피디아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전문가들을 고용하려면 돈이 드는데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작년에도 돈 문제가 거론됐는데 '집단기부'로 해결했습니다.

위키피디아는 미국인 지미 웨일스 주도로 출발했지만 특정인 소유물이 아닙니다. 인류 공동의 자산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위키피디아 혁명'에서 낙오돼 있습니다. 아직도 '지식인'이 최고인 줄 알고 있죠.지식인도 집단지성의 산물이긴 합니다. 그러나 위키피디아가 대학생이라면 지식인은 유치원생입니다. MS가 엔카타를 포기한 건 지식인보다 못하기 때문은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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