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삭감 차별없다…기존직원도 대상

잡셰어링(일자리 나누기) 바람 속에서 신입 사원 뿐 아니라 기존 샐러리맨의 급여도 깎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10일 정부와 금융권 등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잡셰어링 차원에서 공기업의 대졸 신입 사원과 기존 간부에 이어 일반 직원의 임금 삭감 분위기까지 유도하고 있다.이에 따라 일부 공기업들이 임금 삭감 등의 고통분담 방안들을 검토하기 시작했으며 은행들은 아예 내주부터 본격적인 임금 단체협상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런 움직임은 ▲신입사원 임금만 삭감하는 것은 임금 시스템의 균열을 초래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해 정부와 노조가 차별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행태이며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인 고비용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는 그러나 이 같은 임금 삭감 움직임에 반발하며 투쟁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어 일자리 나누기를 위한 급여 삭감을 둘러싸고 노사간 갈등이 첨예해질 것으로 보인다.◇ 공기업.금융기관 기존직원도 임금삭감 움직임
일반 직원에 대한 임금 삭감 바람은 금융공기업들 사이에서 서서히 일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간부급(1~2급)과 일반 직원 등의 임금 삭감 방안을 놓고 다각적으로 검토 중이다.

주택금융공사도 기존 직원에 대한 임금 삭감 등의 방안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김동수 수출입은행장은 "현재 노사가 대졸 초임 삭감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며 추가로 기존 직원의 고통 분담(임금삭감)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또 보통 4~5월에 시작되는 임금 단체협상을 앞당겨 시작하기로 했다.

은행연합회는 내주 초 2차 중앙노사위원회를 열어 일자리 나누기에 대한 논의에 착수키로 했다.연합회 고위 관계자는 "이번 협상이 잘 진행되면 기존 직원을 포함한 임단협으로도 진행될 수 있다"며 "내주부터 시작되는 중앙노사위 논의에서 어느 선까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조율할지에 대한 윤곽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노조 측과 일반 직원들에 대해 연차휴가수당과 시간외근무수당을 축소키로 합의했다.

◇ 기업들, 임금 동결로 가닥
기업들 중에서는 SK에너지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SK에너지는 최근 팀장급 직원 250여명에 이어 이날 울산공장의 연봉제 사원들도 연봉의 5%를 자진 반납키로 했다.

이에 따라 본사 연봉 사원들도 조만간 연봉 자진 삭감에 참여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대다수 기업들은 일단 기존 직원에 대해 삭감보다 동결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최근 30대 그룹이 회의를 열고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을 삭감키로 했으나 기존 직원에 대해서는 동결과 삭감 등을 놓고 최종 결론을 내지 못하고 수 년간 임금을 동결하는 방향으로 정리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임금을 동결하고 PS(초과이익분배금)와 PI(생산성격려금)를 축소키로 했다.

PS의 상한선은 연봉의 최대 50%에서 30%로 낮아지고, PI는 월 기본급의 최대 300%에서 200%로 내려간다.

삼성전자는 또 장기휴가 제도를 활성화하고 야간 초과 근무자를 위한 교통비를 폐지했다.

LG전자도 올해 임금을 동결키로 했으며 STX그룹 내 STX에너지 등의 기업들도 임금 동결을 선언했다.

이외 동국제강과 유니온스틸, KT&G 등의 기업들도 임금 동결을 결정했으며 현대백화점 과장급 이상 간부들과 대한항공 일반직 노조도 임금을 동결키로 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설립 이래 처음으로 임금인상안을 회사측에 위임했다.

◇ 기존 직원 임금 삭감 이유는
정부가 대졸 초임뿐 아니라 기존 직원에 대해서도 임금 삭감을 유도하고 나선 것은 올해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가 심화해 사회 전반적인 일자리 나누기를 해야 어느 정도 고통을 분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고소득 근로자의 임금수준을 하향 조정함으로써 실업 감소와 우리 경제의 고질적 병폐인 고비용 문제 해결 등의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더구나 최근 정부 주도로 추진된 청년 인턴제에 대한 비난 여론이 고조되고 있는 점도 일반 직원의 임금 삭감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채용된 인턴들은 하루종일 복사 등의 허드렛일만 하는 등 방치됐다가 1~6개월이 지난 후에 또 다시 실업자로 돌아가기 때문에 실질적인 실업 감소에 별 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또 신입 사원에 대한 임금만 깎아 고용을 확대할 경우 조직내 갈등의 증폭으로 분위기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노조가 기존 직원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상대적 약자에 해당되는 신입사원들의 희생을 방치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대졸 초임만 깎고 기존 직원의 임금을 그대로 두는 것은 형평성 등에서 문제가 있어 공기업 일반 직원들도 임금 삭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 노동계, 총력투쟁도 불사
노동계는 그러나 이 같은 정부 주도의 실질 임금 삭감 움직임에 대해 이미 계산된 수순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경영자나 대주주의 고통 분담 없이 근로자 임금 삭감을 처음으로 시도하는 사업장을 타깃으로 총력투쟁을 전개하겠다고 경고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직책별 임금체계 기준에서 신입사원 임금을 깎으면 그 위 직급들도 하향조정될 게 뻔하고 임원 임금을 삭감하면 그 아래 직원들 임금도 깎일 수밖에 없다"며 "전방위적 임금삭감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작년 9월부터 잔업과 특근이 없어져 40만~50만원 정도의 임금이 이미 삭감된 상태"라며 "여기에 야간근무도 없애고 휴업까지 하게 되면 100만 원 이상 임금 차이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금융산업노동조합 역시 내주 시작되는 본격적인 올해 임금단체 협상에서 임금 동결을 마지노선으로 놓고 삭감을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최근 금융산업 자체가 어려워진 마당에 인상을 요구할 수 없고 고통을 분담하는 데 동참할 것"이지만 "금융권은 작년에 임금을 동결한 만큼 올해는 절대 삭감 불가"라고 맞섰다.

이에 따라 기존 직원들의 임금 삭감은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정부 부처의 한 관계자는 "당장 노조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에 공기업 일반 직원의 임금 삭감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며 "경제성장률 등의 지표 상으로 공공부문 노조도 더 이상 고통분담을 피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형성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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