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맛 찾기 위해 하루 팝콘 열 가마니도 튀겨"

'요리사 아닌 요리사' LG전자 글로벌 조리기기 연구원들

퀴즈 하나―팝콘은 하루에 한 가마를 기본으로 튀긴다. 잘못 걸리면 하루 종일 티본 스테이크를 먹어야 하고 피자를 하루 종일 구워 댄다.

어떤 직업일까. '요리사'를 외쳤다면 오답이다. 전자레인지와 오븐을 만드는 연구원이다. 조리기기 연구원의 세계는 먹을 거리로 시작해 먹을 거리로 끝난다. 짜고 달고 맵고 시고 씁쓰름하고….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맛의 표준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이들의 몫이다. 지난 6일 경남 창원 LG전자 글로벌 조리기기 연구실에서 이들을 만났다. LG전자 글로벌 조리기기 연구실은 30평 아파트를 통째로 주방으로 개조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특이한 것은 이글이글 불 타오르는 피자 화덕,대형 레스토랑에서나 볼 수 있는 데크 오븐,인도에서 쓰는 큰 항아리 모양의 탄두르(화덕)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는 점이었다.

연구실 문을 열자 김광화 책임연구원(39)이 웃으며 내부 온도가 섭씨 500도 가까이 올라 있는 피자 화덕 앞으로 안내했다. 권영미 연구원(27)이 날랜 손놀림으로 방울토마토와 치즈를 얹은 피자 반죽을 화덕에 넣었다. 피자가 금세 부풀어 오르면서 연구실 안에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김 연구원은 "나폴리 피자 중 하나인데 요즘 전자레인지로 어떻게 하면 이 맛을 똑같이 만들까 연구 중"이라고 했다. 하루에 한 번 간식 삼아 피자를 만들어 먹는 것이 아니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같은 음식을 만드는 것이 일이란다. 다소 무모해 보이는 이 실험을 왜 하는 것일까.

답은 '수출'에 있었다. LG전자가 만드는 전자레인지가 전 세계에 팔려 나가면서 고객을 사로잡기 위해선 해당 지역에 맞는 '맛'을 연구해 전자레인지에 적용해야 했던 것.이들이 최근 선정한 도전 과제는 프랑스 러시아 미국 이탈리아 등 14개국 64가지 요리.서로 지역을 나눠 음식을 맡아 연구를 시작했다. 처음엔 고생투성이였다. 인도 대표 요리인 '탄두리 치킨'을 만들어야 했는데 이를 만드는 탄두르가 없었다. 알음알음으로 공수해 들여왔다. 불만 때면 요리가 되는 줄로 알고 참숯을 태웠다. 근데 요리는커녕 연구실에 그을음이 시커멓게 끼었다. 현지인 조언대로 소금물도 발라 보고 요구르트도 발라 봤는데 그을음은 가시지 않았다. 결국 수소문 끝에 인도 엔지니어를 찾아 화덕을 고쳤다.

안성순 수석연구원(45)은 매일 팝콘을 튀긴다. 어떤 날은 전자레인지로 열 가마에 달하는 팝콘을 튀긴 적도 있다. 안 수석연구원은 "미묘한 온도 차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팝콘을 튀기면서 전자레인지 열을 쏘는 방식과 온도를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이들의 열과 땀으로 만들어진 전자레인지는 2007년부터 매출 기준 세계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 반열에 올라 있다. 이들이 생각하는 꿈의 조리기기는 무엇일까. 안 수석은 "집에 가는 길에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만 해도 알아서 재료를 찾아와 집에 도착할 때쯤 만들어 내는 그런 제품"이라고 했다.

창원=김현예 기자 yeah@hankyu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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