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동·서간 `新 철의 장막' 대두하나

"동구지원펀드 무산…격차 엄존 재확인"

동.서 유럽 간의 지역적 격차에 따른 갈등이 세기적 경제위기의 도래로 인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2007년말 리스본 조약 합의를 통해 경제권 통합을 넘는 정치통합의 꿈에 한 걸음 더 다가섰던 유럽연합(EU)이지만, 경제위기의 한파 속에 통합을 주도해온 국가들마저 EU 전체의 통합보다 지역적 격차를 인정해야 한다는 현실론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EU의 27개 회원국 정상들은 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비공식 정상회담을 열어 `보호주의 배격'이라는 큰 틀의 원칙에 합의했으나, 중부와 동부 유럽 회원국의 경제위기 구제를 위한 펀드 조성 제안은 일부 회원국의 반대로 끝내 무산됐다고 AP통신 등 주요 외신이 2일 전했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 아시아판에 따르면 애초 긴급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보호주의에 대한 반대였지만 사안의 시급성과 중요성으로 인해 동유럽 지원 문제가 실제 주요한 논제로 다뤄졌다.앞서 헝가리의 쥬르차니 페렌츠 총리는 동유럽 9개국을 대표해 최대 3천억유로(약 581조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우선 1천900억유로의 특별펀드 조성을 제안했다.

그러나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EU 회원국들 간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구제방침도 사례별로 강구돼야 한다"고 이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일부 동유럽 국가들도 이에 동조, 결국 펀드 조성이 무산되고 말았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페렌츠 총리가 동유럽 지원이 성사되지 못할 경우 동.서를 가르는 새로운 철의 장막이 드리울 것이라며 하나의 유럽을 위한 지원의 당위성을 역설했지만 현실은 차가웠다.회담 과정에서 각국은 보호주의를 배격한다는 원칙에 동조하면서도 각자의 산업보호에 첨예한 관심을 드러냈다.

또한 동구 내 긴급 구제를 필요로 하는 국가들과 그렇지 않은 국가 간 인식의 차이도 컸다.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EU의 현 정부보조금 제한 규정이 너무 엄격해 시대에 맞게 개정돼야 할 필요가 있다며 각자 자국 자동차산업에 대한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사르코지 대통령 본인이 미국의 자동차 산업 지원에 대해 보호주의라고 비판하며 우려한 것이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체코국의 미렉 토폴라넥 총리는 중.동부유럽 구제펀드 제안과 관련, "동유럽과 그 외의 유럽을 가르는 것이 현 상황에서 필요한 조치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폴란드의 도날드 투스크 총리 또한 "동유럽 내에는 헝가리같이 구제를 필요로 하는 나라도 있지만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처럼 그렇지 않은 나라들도 있다"며 "각국 간 연대를 과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럽 전체에 대한 고려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글로벌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EU 정상들은 각자의 산업보호와 EU 전체의 이익 추구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표류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든 것으로 보인다.

유럽상공회의소의 아르날도 아브루치니 회장은 "이번 회담은 경제위기 해결을 위한 어떤 구체적 방안도 마련하지 못한 비생산적인 정치적 쇼였으며 회원국들 간의 우려스런 경제적 협력의식 부재만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이는 또한 EU 내 각국의 지역격차가 통합의 진전을 가로막는 주요한 장애물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일깨운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다.

(서울연합뉴스) 김중배 기자 jb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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