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벼랑끝 대치' 전운 고조

4월 임시국회 마지막날인 2일 오후 본회의를 앞두고 여야간에 일촉즉발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본회의장과 국회의장 공관을 양대 거점으로 밤샘 대치해온 여야는 이날 새벽부터 본회의장 앞을 `주전선'으로 한 첨예한 대치양상에 돌입하면서 시시각각 물리적 충돌을 예고하는 강성분위기로 치닫고 있다.여야의원 50여명이 서로 마주앉고 그 주위를 커다란 원처럼 200여명의 당직자들이 에워싸고 있는 로텐더홀 현장은 여야간 대치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의장공관 심야 기습점거에 성공한 한나라당은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의 출근 자체를 원천봉쇄하고 나섰고, 본회의장과 의장실 주변을 장악한 열린우리당은 `의장 유고(有故)'에 대비해 김덕규(金德圭) 국회부의장을 `제3의 장소'로 은밀히 피신시키는 `007 작전'을 펴는 등 양측 대치의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열린우리당 오후 2시로 예정된 `결전'에 대비해 막판 전열을 정비하고 만반의 준비태세를 점검하는 등 오전 내내 긴박한 움직임을 보였다.

작년말 정기국회 당시 사학법 개정안을 강행처리할 때의 `전투모드'가 고스란히 되살아난 듯한 분위기다.

`최후의 보루' 격인 본회의장을 선점한 우리당은 `사회권 확보'를 최우선 순위로 삼아 비상 대비태세를 구축하는데 주력했다.특히 김원기 의장이 한나라당의 출근저지로 사회권을 행사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김덕규 부의장의 `신병보호'에 전력투구하는 모습이었다.

김 부의장은 전날 밤부터 당직자들의 엄호 속에서 부의장실에서 본회의장으로 이어지는 통로 부근의 `제3의 장소'에서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국회의장실과 부의장실 주변은 우리당 당직자들과 보좌관들이 대거 포진해 삼엄한 경비태세를 펴고 있다.핵심 당직자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본회의장으로 통하는 `안전통로'는 이미 확보됐다"고 말했다.

우리당은 이와 동시에 우리당 의원 20여명과 당직자 50여명을 본회의장 앞으로 내보내 `철통방어'선을 구축하는데도 주력했다.

국회에서 당직자들과 밤샘을 한 김한길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6시께 본회의장 앞으로 나와 대기조를 격려했다.

우리당은 또 한나라당을 향해 "민생을 발목잡는 정당"이라고 맹비난을 퍼부으며 법안 강행처리의 명분을 축적하는데도 주력했다.

노웅래(盧雄來)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는 "한나라당이 민생과 국익관련법을 아무 이유도 없이 물리력으로 막는데 대해 표 떨어지는 소리가 안들리는 지 궁금하다"며 "부동산 값을 올리려고 하는 것인지, 독도를 일본에 넘기려고 하는 것인지 입장을 분명히 밝히라"고 비판했다.

일부 당직자들은 본회의장 앞에 나와 `독도는 우리땅...동북아역사재단 반대하는 한나라당' `서민들은 땅을 치고 분노한다..한나라당의 투기세력 옹호 총궐기에' 등의 문구가 적힌 8절지 크기의 종이를 흔들어댔다.

우리당은 그런 한편으로 오전 정동영(鄭東泳) 의장 주재로 최고위원회의와 원내대책회의를 잇따라 갖고 법안 처리전략을 숙의했다.

당 지도부는 민주노동당이 본회의 참여의 조건으로 제시한 주민소환법과 국제조세조정법의 추가 직권상정이 성사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우리당 원내 핵심관계자는 "김 의장이 민노당이 요구한 추가 직권상정 요구를 분명히 들어줄 것"이라며 "본회의 의결정족수 구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김 의장이 김덕규 부의장에게 사회권을 넘기면 김 부의장이 민노당이 요구한 법안을 추가로 직권상정하겠다는 전략이 깔려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나라당

3.30부동산후속대책 3개 법안 등의 본회의 강행처리를 반드시 막겠다는 `불퇴전'의 각오로 기동성있게 움직였다.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을 점거한 의원 30여명은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이 기상하자 마자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며 외부일정을 철저히 통제했다. 또한 아침 일찍 1차 선발대로 국회 본회의장 정문에 도착한 일부 의원들은 미리 진을 치고 있던 우리당 의원들과 대치하며 진입을 시도했다.

특히 한나라당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안테나'를 가동해 김 국회의장 대신 본회의 의사봉을 잡을 것으로 예상되는 김덕규(金德圭) 국회부의장의 소재파악 및 본회의장 입장저지 대책 마련에 골몰했다.

국회의장 공관을 점거중인 이병석(李秉錫) 주성영(朱盛英) 의원 등은 오전 8시15분부터 15분간 김 국회의장과 면담을 갖고 직권상정 자제를 거듭 요청했으나 김 의장은 "내가 자유롭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부의장이 하도록 조처를 해 놓았다. 나에게 이러는 것이 의미가 없다"며 농성해제를 촉구했다.

특히 김 국회의장은 "목이 아파서 병원도 가야하고 점심때는 DJ(김대중 전 대통령) 초청 부부동반 오찬이 있다. 행선지를 밝히고 비밀행동도 하지 않겠다"며 양해를 구했으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두 약속 모두 미뤄달라"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김 국회의장은 포기한 듯 약속을 미루면서 "(과거에도 공관점거가 있었지만) 공관 내실에까지 들어와 이런 적은 없다"며 불쾌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본회의장 진입 시도도 계속했다. 의원 40여명은 본회의장 정문 앞에 앉아 있는 우리당 의원들과 발이 맞닿는 지점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신경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 의원들과 주변에 서 있던 우리당 의원 보좌관들 사이에 `XX' 등의 욕설이 오가는 고성이 이어졌다.

한나라당 윤건영(尹建永) 의원은 "의원들한테 이렇게 쌍욕을 해도 되느냐"고 고함을 쳤고, 우리당 의원 보좌관들은 "의원이면 욕해도 되느냐"고 맞서면서 일순간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 광경을 목격한 우리당 유재건(柳在乾) 의원은 "너무 창피한 모습이다. 보좌진들은 의원님들을 막 대하지 말고 좀 존중해 달라. (윤 의원도) 소리 지르지 말라"며 양측에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현장에 있던 우리당 조일현(曺馹鉉), 한나라당 안경률(安炅律) 원내수석부대표는 오전 국회 귀빈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별도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계진(李季振)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여당이 어제 밤늦은 시각 한나라당 의원들의 국회 본회의장 출입을 막기 위해 여성 비서진들을 맨 앞줄에 배치했다"면서 "이는 신체접촉 과정을 유도해 `성추행 했다'고 뒤집어 씌우려는 상식이하의 방법"이라고 맹비난했다.

◇민주노동당

주민소환제법이 추가로 직권상정돼야만 본회의에 협조할 수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김성희(金成熙) 부대변인은 "직권상정까지 해가며 언제든 합의처리가 가능한 3.30대책법안만 처리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면서 "이번 회기가 아니면 물건너 갈 가능성이 높은 주민소환제법이 꼭 처리돼야 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민노당은 천영세(千永世) 의원단대표와 심상정 의원단 수석부대표 등 소속 의원 9명 전원이 국회에서 대기하며 주민소환제법 직권상정 여부를 주시했다. 민노당은 주민소환제법의 직권상정 여부를 지켜본 뒤 의총을 열어 최종입장을 결정키로 했다.다만 민노당은 추가 직권상정을 요구해 온 국세조세조정법의 경우 우리당이 6월 임시국회 처리를 약속하면 여당의 법안 처리에 협조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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