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수 감독, "예술영화가 아니라 상업영화다"

"예술영화보다는 상업영화 쪽에 가까운데도 관객들 만나기가 쉽지 않네요." 중견 장길수 감독의 영화 '초승달과 밤배'가 25일부터 관객들을 만난다. 감독 자신에게는 98년 '실락원' 이후 8년만에 내놓는 신작이 되는 이 영화가 세상에 빛을 보게되기까지는 여느 영화들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2002년 첫 촬영을 시작해 2003년 봄 보충촬영으로 제작을 마쳤으니 영화는 완성뒤 2년여 만에 관객들을 만나게 된 셈, 올해 초 영화진흥위원회의 마케팅 지원작으로 선정돼 4-8개 가량 비교적 적은 수의 스크린에서 나마 관객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은마는 오지 않는다',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중견 장길수(50) 감독. 스스로의 표현대로 하면 그는 요즘 많이 배우고 있다. "예술영화도 아닌데 배급사 잡기가 쉽지 않네요. 이 정도 규모의 영화가 겪게 되는 벽 같은 것을 느끼고 있어요. 멀티 플렉스 극장들을 돌아다니며 거대 자본과 시장 경제의 비정한 모습을 제대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동화작가 고 정채봉 선생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이 영화는 70년대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궁핍한 생활속에서도 순수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골 아이나난과 옥이의 모습을 과장되지 않게 감동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영화의 제작비는 초저예산인 10억원 가량.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4억원의 제작 지원을 받은 다음에야 힘들게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장 감독이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 94년의 일이다. 잠자리에서 원작 소설을 집어 든 그는 밤새 책을 읽어 내렸고 다음날 아침에는 베개가 흥건이 젖어 있을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다. 이후 정채봉 선생에게 영화화에 대한 허락을 받은 그는 지난 99년 본격적으로 영화화 작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주인공인 만큼 배우 개런티는 어느 정도 아낄 수 있었지만 사실 시대극이며 동시에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했던 이 영화는 저예산으로 만들어지기에는 무리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경험이 많은 스태프들과 탄탄한 조연진들. "시대의 재현에서는 어느 정도 완성도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지만 주변 인물들에게 많은 비중을 뒀어요. 그래서 캐스팅에도 신경을 많이 썼는데 예산이 워낙 적어야죠. 그러다보니 이분들에게 교통비 정도밖에 못 줬어요. 다행히 원작이 좋아서였는지 조건(개런티)이 나빠도 많은 분들이 헌신적으로 열심히 해주셨습니다." 서울과 어촌을 오가며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이 됐지만 영화는 20회차의 촬영으로 진행됐다. 신씨네의 도움으로 노련한 스태프들을 꾸릴 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아역배우들. 장 감독은 "아이들 연기에는 부족할 게 없었지만 워낙 스케줄이 빡빡해 자던 아이들을 새벽에 깨워서 연기를 시키는 등 고생을 많이 시켰다"고 설명했다.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지만 영화는 애초의 계획보다 2년 이상 늦춰져 관객들을 만나게 됐고 그 사이 한국 영화계는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을 두 편이나 탄생시켰으며 세계 주요 영화제에 꾸준히 수상작을 냈다. 영화의 출연배우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남자주인공 요섭이는 어느새 변성기를 거치고 있는 청소년이 됐으며 그새 장서희와 양미경은 TV 드라마를 통해 최고의 주가를 올리기도 했다. 원작자는 결국 영화를 못보고 돌아가셨고 김일우 역시 고인이 됐다. "마케팅이나 배급 비용에 제작비 이상의 돈이 들어가니 배급하려는 회사를 찾기가 쉽지 않은 거에요. 그렇다고 그냥 비디오로 출시하고 싶지는 않았고 여기저기 접촉을 하면서 시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죠." 장 감독은 "후배들의 다양한 시도로 영화계가 활기차진 것은 보기가 좋은 일"이라며 최근의 영화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분명히 했다. "영화 산업의 활황을 위한 기획 영화의 존재 이유를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좀 더 다양한 영화가 나와야 합니다. 다양한 규모의 제작비와 배급 규모로 다양한 영화가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구조가 우리 영화계에 좋지 않을까요. " 국내외 기대작들 사이에서 선보이는 이 영화에 감독이 바라는 흥행 목표는 "영진위의 제작 지원금을 상환할 수 있는 정도". 15만명 정도의 관객은 동원해야 한다. "지금까지 줄곧 그랬듯, 나는 상업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고 '초승달과 밤배'도 관객들과 함께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상업영화다"고 설명하는 그는 "이번에는 좀 빨리 관객들을 만날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차기작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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