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 대담] 벤처기업협회장 장흥순-'잃어버린 영웅' 저자 안혜숙


정부는 사업에 실패한 경영인에게도 일정한 평가를 거쳐 기술신용보증기금의 보증지원을 해주는 "패자부활제"를 주내용으로 하는 벤처기업 활성화대책을 최근 내놨다.


침체에 빠진 우리경제를 살리기 위해 벤처기업을 활성화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난 1999년~2000년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켰던 벤처열풍을 상기시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장흥순 벤처기업협회회장과 소설가 안혜숙씨가 서울 역삼동 벤처기업협회에서 만나 우리 경제의 활성화방안과 진정한 "기업가정신"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안씨는 대우그룹 몰락을 다룬 기업소설 '잃어버린 영웅'의 저자다.
[ 벤처기업협회장 장흥순 ]


1960년생

충북고 서강대 전자공학과

KAIST 전자공학과(박사)

공작기계연구조합 이사장 벤처기업협회 회장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

참여정부 인수위 IT분과 자문위원


[ 기업소설 '잃어버린 영웅'저자 안혜숙 ]


1945년생

남원여고

숙명여대 작곡과

계간 '문학과 의식' 발행인

장편 '고엽''다리위의 사람들'

중편 '저승꽃'(KBS문학상 수상),'지붕위의 자전거''아버지의 임진강'

시집 '멀리 두고온 휘파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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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순 회장=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경제전망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얼어붙은 내수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고 환율급락이나 중국의 도전 등 대외적인 조건도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진정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우리 기업들,특히 벤처기업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안혜숙 작가=과거 이병철 회장이나 정주영 회장 시절에는 경제적으로 어렵긴 했지만 나름대로 꿈과 희망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도전의지가 우리사회에 충만해 있어서 어려워도 힘든 줄 몰랐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 기업인들은 과거처럼 국민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장=얼마 전 정부가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대규모 지원책을 내놓은 데서 알 수 있듯 우리 경제의 회생을 위해서는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봅니다.


지난 99년부터 2000년 사이 전국적으로 벤처붐이 일었다 꺼지면서 심각한 부작용도 낳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시행착오로 봐야 합니다.


○안=기대가 크다 보니 이에 따른 실망도 컸던 것 같습니다.


저도 기억하지만 휘황찬란했던 테헤란로가 썰렁해진 것은 한순간이었지요.


○장='다산다사(多産多死)'라는 말이 있는데 벤처기업의 속성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입니다.


수많은 기업 중 경쟁력에서 뒤처지는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창업한 기업 중 약 95%가 문을 닫고 불과 5%만 살아남는다는 최근 통계도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실리콘밸리가 제대로 정착하는 데 무려 50년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안=하지만 뛰어난 기술력을 갖췄으면서도 마케팅이나 홍보 등 경영적인 측면에 서툴렀던 기업까지 부실기업과 함께 시장에서 내몰린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장=물론입니다.


방금 얘기한 것처럼 벤처업계는 실패와 도전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곳입니다.


다만 우리는 이를 제대로 걸러내는 경험이나 시스템이 부족했습니다.


기업가는 기업가대로 기술이나 아이디어만 있었지 이를 사업화하는 능력이 모자랐고 정책 입안자는 또 이를 체계적으로 지원할 마인드도 갖추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안=오늘날 휴대폰이나 반도체 등에서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세계 일류를 달리고 있지만 이들 제품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은 벤처기업들이 만든 것들이라고 들었습니다.


독자적인 기술력을 갖춘 벤처기업들이 나름대로의 틈새시장을 개척한 것인데 이게 원래 벤처의 참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장=카메라폰에 들어가는 CAP칩이라는 핵심부품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한 벤처기업이 제조하는데 얼마 전만 해도 20억∼30억원에 불과하던 연 매출액이 최근 1천7백억∼1천8백억원으로 급증했습니다.


과거 산업화 사회와는 구분되는 오늘날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에 벤처의 성장모델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반도체나 휴대폰,온라인 게임기시장에서는 이런 가능성 있는 기업들이 이미 많이 나왔죠.앞으로도 이런 혁신형 중소기업들이 늘어나서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으로도 진출해야죠.


○안=대기업과 벤처기업 간 이상적인 역할분담도 필요할 것 같은데요.


○장=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은 대기업들이 맡고 위험 가능성이 높은 쪽은 벤처가 전담하는 이른바 수평적·전략적 제휴가 가장 이상적인 결합형태라고 봅니다.


과거 대기업들이 담당했던 중공업이나 조선,석유화학 등 중후장대형 산업이 우리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지만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엔 덩치는 작지만 민첩한 행동이 가능한 벤처기업이 유리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


○안=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아직도 우리사회 일부에 남아 있는 '반(反)기업 정서'도 문제지요.


○장=우리사회의 부가가치 창출을 궁극적으로 기업인들이 한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좀더 우리 기업인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봐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기업인들이 모두 잘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성장과정에서 분명 공과(功過)가 있었지요.


하지만 어렵던 시절 기업인들이 흘렸던 땀과 눈물의 진정성까지 송두리째 부정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이건 아니다'싶은 생각이 많이 들죠.


○안=우리 사회는 성공한 사람이나 승자에게는 박수를 보내지만 실패한 사람에게는 너무 가혹한 게 아닌가 합니다.


실패한 기업가들에게도 또 한번의 기회를 주는 풍토가 조성돼야 하는데 아직 우리국민들의 정서는 그렇지 않아요.


외국에서는 실패한 기업인을 우리처럼 폄하하거나 매도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들었습니다.


○장=최근 창업에 나서는 젊은이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사회가 창업에 실패한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거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패한 사람에게 무한책임을 강요하며 신용불량자로 낙인 찍는 사회에서 누가 감히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하고 창업전선에 뛰어들 수 있겠습니까.


실패하면서 배운 경험은 소중한 사회적 자산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시급히 필요한 일은 신기술 개발에 용감하게 도전장을 내밀 수 있는 젊은 기업인을 양성하고 또 가능성 있는 기업에 뛸 터전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안=국민들의 신뢰회복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기업들이 획득한 이윤 중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유한양행의 창업자인 고(故) 유일한 박사가 지금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도 이윤의 사회환원에 그만큼 열심이었기 때문이지요.


최근 들어 우리 기업인들 사이에 이런 풍토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장=벤처기업협회도 얼마 전부터 '도덕경영'과 '윤리경영'을 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제품 생산하고 팔아서 이윤 챙기는 단순한 기업구조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죠.


○안=얼마 전 제가 대우 김우중 회장의 몰락을 그린 소설 '잃어버린 영웅'을 펴냈습니다.


아직도 김우중 하면 '부도덕한 기업인'의 대명사처럼 여기는 사회 분위기지만 저는 좀 다르게 봤으면 합니다.


경위야 어찌됐던 김 회장과 대우는 국가경제의 한 축으로 우리경제의 성장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게 사실 아닙니까.


○장=개인적으로 김 회장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일벌레'라는 별명처럼 평생을 일만 하면서 보냈던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들 다하는 골프도 시간이 없어서 못 했다는 분 아닙니까.


○안=책을 내고 난 뒤 "김우중이 어떻게 영웅이냐"고 따지는 분들도 있었지만 "용기 있는 소설이다" "잘 썼다"라고 격려하는 분들도 의외로 많았습니다.


평가야 각자 다를 수 있지만 저는 한국경제 신화의 한 주역이라고 봅니다.


대우를 해체해서 우리경제 전체에 어떤 이득이 있었냐는 점도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장=대우가 폴란드 등 동구권에 지은 자동차 생산라인도 지금은 GM 등 외국 자동차업체들이 힘 들이지 않고 인수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이죠.


○안=이런 비유를 한번 해보죠.우리가 집을 지을 때 당초 예상보다 크게 지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에 따른 비용이 더 들어가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넌 돈도 없으면서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했느냐'라며 건설 중이던 집을 부수지는 않습니다.


○장=김우중 회장이나 이병철 정주영 회장,이런 분들은 모두 맨주먹으로 시작해 오늘날 성공신화를 일궈낸 창업가형 CEO의 전형이었습니다.


창업가형 CEO의 특징은 '위험을 과감히 무릅쓰는 기업가 정신'에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도 바로 이런 창업가형 CEO들이 아닌가 합니다.


○안=기술과 아이디어로 무장하고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위험도 불사하는 기업인이 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기업인상입니다.
정리=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


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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