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새로운 시작] ② 박형배 HR트러스트 대표이사

한동안 몸과 정신 모두 공황 상태였다. 거의 매일 밤 술을 마셨고 낮에는 멍하니 넋을 놓는 일이 많았다. 아침마다 그렇게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싫더니, 그때는 새벽 5시면 눈이 저절로 떠졌다. 출근할 곳이 없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었다. 20년 동안 단 하루의 결근도 없이 집을 나서던 그에게는 너무 생소한 하루하루였다. “아, 이래서 사람이 이상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20년 동안 쳇바퀴 돌 듯 반복해 온 일상을 하루아침에 멈춘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인력파견 전문업체 HR트러스트를 이끌고 있는 박형배 사장(51)은 1년 전 이맘때 혹독한 ‘퇴직 신고식’을 치렀다. 교보생명이 직원 1,000명을 감원한 지난해 9월, 명예퇴직자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오른 후부터 모든 생활이 바뀌었다. 마지막 직함은 교보생명 강동지점장. 생보업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그 일터를 뒤로하고 20년 직장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교보생명 공채 1기로 입사, 인사팀과 인력개발팀에서 12년을 일하고 제주, 송파, 천호, 강동지점장을 역임하면서 보험 마케팅업무까지 두루 섭렵한 그는 20년 동안 ‘일벌레’에 다름 아니었다. 회사 내 인사전문가로 회사 정책에 부합하는 인사제도를 입안 실행하려면 다양한 분야에서 실무 경험이 필요한지라 영업현장에서도 열심히 뛰었다. 박사장은 그때를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쉬지 않고 달린 세월”이라고 자평한다. 퇴직 후 혼돈스러웠던 생활은 새벽기도와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정리할 수 있었다. 또 그에게는 사려 깊은 아내가 있어 쫓기듯 다급한 마음만은 덜 수 있었다. “퇴직 7~8개월 전부터 아내가 대안을 찾기 시작했어요. 임원이 되지 못했으니 회사생활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 예상한 거죠. 편의점을 개업했는데, 그런 대로 안정적이었습니다. 퇴직 전후 불안한 마음에 큰 위안이 됐지요.” 더불어 회사가 알선한 DBM코리아의 전직지원 프로그램에 등록,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인사담당자로 있으면서 전직지원 프로그램에 큰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던 터라 망설임도 적지 않았다. “전직지원 컨설팅으로 성공한 사례는 생각처럼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나 자신이 인사전문가인데,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자존심 상하기도 했죠. 하지만 겸손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타이르면서 먼저 자기진단 테스트를 받아 봤어요. 그 결과 놀랄 만큼 정확한 진단이 나와 믿고 따르기로 했습니다.” 지난 2월까지 5개월 동안 20여명의 퇴직 동료와 함께 교육을 받고 새 일을 찾아다녔다. 일본으로 창업여행을 다녀오는 한편 관심 있는 업종에 대한 자료수집에도 매진했다. 그의 열성은 컨설턴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회사 그만 둔 뒤 풀이 죽었더라’는 말을 듣기 싫은 마음에 더 바삐 움직였다. 그러던 어느날 한 컨설턴트가 “퇴직 후 6개월 안에 새 일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마음만 다급해져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 말에 자극을 받았다. ‘퇴직 후 6개월’이라면 2003년 3월까지 결론을 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24시간 영업하는 아내의 편의점 사업이 너무 힘들어 그 짐을 덜어주고픈 마음도 굴뚝같았다. “시장조사를 하면서 그동안 쌓은 네트워크를 활용할 만한 업종에 관심이 갔습니다. 그래서 관심을 둔 것이 사무전산용품 전문점이었어요. 중역에 있는 지인들을 동원하면 별 무리 없이 사업을 할 수 있으니까 좋겠다 싶었지요.”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단순히 돈을 번다는 목적으로 제2의 직업을 선택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수익 측면에서 만족스러울지 모르지만, 직업적 의미로서 가치를 부여하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판단이었다. 안이한 접근을 접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주위에 박형배 하면 뭐가 떠오르느냐고 물었습니다. ‘인사’ ‘인력개발’이라는 답이 가장 많이 나오더군요. 저 역시도 인사 관련 업무에 가장 자신이 있어 ‘정답’이다 생각했지요. 하지만 사업 경험이 전무한 사람이 독립 창업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시도입니다. 퇴직금 등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자금을 투자해야 하는데, 잘못 하면 ‘끝’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위험부담이 컸지만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로 성공하겠다’는 열의에 자신감을 더해 인력파견업으로 방향을 바꿔 잡았다. 단순히 직장과 직업을 알선하는 역할이 아니라, 경력을 쌓는 데 도움을 주고 훌륭한 길잡이가 돼 주리라 마음먹었다. ‘미래 사회의 기업 경영 시스템 변화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인력 아웃소싱의 확대’라는 피터 드러커의 예견처럼, 시장성이 풍부하다는 확신도 들었다. 당장 시장조사와 경쟁업체 파악, 마케팅 및 세일즈 전략 수립에 들어갔다. 무엇보다 ‘갑’의 입장에서 ‘을’이 돼야 하는 현실에 적응하는 훈련이 필요했다. 인력 공급처를 찾아 영업에 나서야 하고 기업 인사담당자 앞에서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한다는 점은 ‘마인드 전환’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불어 ‘6개월 내 창업’도 중요한 목표였다. 스스로와의 중요한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퇴직 6개월이 지난 2003년 4월1일 ‘HR트러스트’가 탄생했다. 5명의 직원을 채용하고 취업희망자가 찾기 쉽도록 서울 강남 테헤란로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차렸다. 일목요연한 취업정보를 담은 홈페이지도 완성했다. ‘HR트러스트’라는 상호는 박사장이 직접 설정한 회사의 핵심 가치인 ‘개인에 대한 깊은 존중과 믿음’에서 연유된 이름이다. 창업 8개월째인 현재, HR트러스트는 1,300여개 업체가 경쟁하는 인력파견시장에서 안정적인 위치확보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KT, 테크노마트, A&D신용정보 등에 200명에 달하는 인력을 파견하고 있고 월 3억원선까지 매출이 올랐다. 박사장은 “내년 봄쯤에는 흑자로 돌아설 것 같다”고 조심스레 내다봤다. “운이 좋은 편이죠.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카드사 콜센터 등은 인원을 줄이는 반면, HR트러스트가 확보하고 있는 신용정보사 등에서는 인력을 확충하고 있거든요.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인사담당자로 오랫동안 일한 경력을 감안해 믿고 맡기는 기업들이 많은 것도 빨리 자리를 잡은 비결입니다.” 박사장은 요즘 틈틈이 시간을 내 전직지원 프로그램 수강자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있다. 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어떤 조언을 원하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전의 나는 미래가 막막한 명퇴자였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5년 후의 나는 아웃소싱업계에서 브랜드 선호도 1위 회사의 CEO가 돼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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