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해결사' 최병렬

거대야당 `한나라당호'의 새 선장이 된 최병렬(崔秉烈) 대표는 `해결사'로 통한다. 지난 90년 노태우(盧泰愚) 정부 시절 노사관계가 극한대립으로 치달을 때는 노동장관으로,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인 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건때는 서울시장으로 긴급 투입돼 소방수 역할을 한 게 대표적 사례. 구여권 집권시절 정권 차원의 위기 때면 어김없이 등판한 검증된 `구원투수'인그가 이번엔 두차례나 연거푸 정권창출에 실패한 한나라당의 위기 해결사 역할을 맡게 됐다. 153석의 `골리앗 정당'이면서도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자조와 `빅뱅설'이 당내에 만연한 상황에서 당심(黨心)이 선택한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보수주의자다. 자신에 대한 `꼴통보수'란 지칭도 애칭으로 받아들이는 그는 이번 대표 경선에서도 `보수'와 `수구'의 차이를 강조하며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를 주창, `이념정당'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최병렬'이라는 이름보다 `최틀러(최병렬+히틀러)'로 더 많이 불린다. 경선캠프에선 `최칠(최병렬+처칠)'이라고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강한 이미지를 가급적불식시켜 보고자 해서다. 하지만 금방 `최틀러'로 되돌아갔다. 강력한 카리스마와업무추진력의 인상이 너무 강했던 탓이다. 과거 서울시장 취임사에서 언급한 `접시론'은 그의 추진력과 리더십의 단면을보여준다. "찬장에서 접시를 닦다가 깨뜨리는 것은 용서할 수 있어도 접시가 깨질것을 두려워 해 먼지 낀 접시를 그냥 놔두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 그는 또원칙주의자다. 노동장관 시절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정립해 불법파업을 잠재웠다. 올해 나이 65세. 경선 후보중 제일 나이가 많았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이 `경로당'의 이미지를 굳혔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정치적 사심을 버렸다"며 `징검다리론', `인큐베이터론'으로맞선다. `대권욕심'이 없음을 확약하고 내년 총선 승리와 정권탈환을 위해 정치신인들을 키우는 밀알이 되겠다는 것이다. 경남 산청 출신으로 부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조선일보 편집국장을거쳐 지난 85년 12대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4선 의원, 청와대 정무수석, 문공.공보.노동부장관, 서울시장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고 있다. 지난 97년 신한국당 대선 후보에 나섰고, 98년 한나라당 부총재 경선에선 1위를차지 했으며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에도 출마, `이회창 필패론'으로 맞서기도 했으나대선후보 경선후 선대위 공동의장으로 이회창 후보 당선을 위해 노력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병수기자 bing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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