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대북송금 의혹 해법..洪準亨 <서울대 교수.공법학>

퇴임을 앞두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이 최악의 곤경에 빠진 듯하다. 현대계열사의 대북송금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터에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사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함으로써 엎친 데 덮친 격이 되고 말았다. 이 일은 아직도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는 북한 핵문제와 함께,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조개혁의 성공사례로 빛을 발했던 한국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공산이 크다. 대북송금 문제에 대한 정부의 태도와 처리방식이 과연 적절했는지는 의문이다. 정부는 당초 한나라당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음해니 정치공작으로 매도하다가,대북송금 사실이 확인되자 불길을 진화하는데 급급했다. "남북관계의 지속적 발전과 국가의 장래 이익을 위해 사법심사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문제를 회피하려던 김대중 대통령의 시도는,파문을 잠재우기는커녕 의혹을 증폭시켰다. '현대상선이 지난 2000년 6월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4천억원 중 2천2백35억원을 대북경협사업을 위해 북한에 비밀리에 제공했다'는 내용의 감사원 감사결과 외에는 사건의 실체가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사건의 당사자일 수 있는 대통령과 당국자들이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들어 문제를 덮으려 했기 때문이다. '통치행위'논란도 그렇다. 처음부터 사법심사에서 배제되는 일반적 범주로서의 통치행위란 이론상 인정되지 않지만,대통령의 언명이 과연 통치행위의 법리를 원용한 것인지 자체도 불분명했다. 뿐만 아니라,정부의 누가 어떤 국익을 위해 어떻게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내린 것인지,그리하여 그 어느 조치가 '반국가단체인 북한과 상대하는 초법적인 범위의 일이어서' '우리의 법을 갖고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의혹에 대한 해명과 당부가 오히려 더 많은 의혹을 낳은 셈이다. 이 문제로 인한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해 결자해지(結者解之)라며 김대중 정권이 문제를 처리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또 그런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전술적 기동을 시도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측 대응방식도 적절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결자(結者)의 해지(解之)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결국 이 문제는 이제 곧 출범하게 될 노무현 참여정부가 사실규명과 법적 처리를 위한 소정의 적법절차를 통해 처리해 나갈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신속명쾌한 해결은 단지 희망사항일 뿐이다. 이러한 종류의 의혹이 단기간 내에 분명히 해소되는 것은 본래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이 와중에서도 김대중 정부의 일부 인사를 제외하고,여야 대다수가 남북관계 한국경제의 대외적 신뢰 문제 등 국익의 손상을 극소화하면서 사실관계를 규명해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데 견해를 공유하기에 이른 것은 다행이다. 김석수 국무총리가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이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대두된 이상 실체적 진실을 규명,명확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도 고무적이다. 그의 말처럼 '대북송금 관계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해 대북 화해·협력정책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이고 또 '송금 진행과정의 실정법 위반은 부수적인 것이고 실체는 대북 화해 협력과 관련된 것'이라는 판단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러한 판단을 누가 내리며 그 판단을 가능케 할 진실을 어떻게 밝히느냐에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정부당국자 누구든 이 문제를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내세워 검찰수사 유보 등의 방식으로 사법심사에서 배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에 대한 종국적 판단권은 대통령이나 행정부가 아니라 사법부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가 형사소송이나 행정소송,헌법소원 등을 통해 구체적 사건으로 제기된 상황을 전제로 한다. 반면 국회가 이 문제에 대해 청문을 하는 것은 당연한 소임이다. 이 사건을 규명하기 위한 특별검사제를 도입할 것인지 여부는 국회가 1차적으로 사건 관련당사자들의 국회 증언과 청문을 실시한 후 심의 결정해야 할 문제다. 대북송금 의혹은 좋든 싫든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포함한 정치권에서 풀어야 할 정치적 과제가 됐다. 이 문제를 정치권에서 풀지 못하면 사법적 해결만이 남는다.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joonh@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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