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형 국가로 가자] (2) '열린경제'가 살 길

한국경제신문이 새 정부에 던지는 두번째 화두(話頭)는 '개방형 선진 시장경제로의 도약'이다. 한국 경제는 경제 개발이 본격화된 지난 60년대 이후 대외 개방을 통해 성장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70년 35.2%에 불과했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교역 비중은 2000년 72.1%까지 치솟아 대외 의존도가 수직 상승했다. 우루과이라운드(UR) 등 다자간 무역협상을 거치면서 공산품 평균 관세율이 8%로 낮아지고 외국인 투자제도가 대폭 개선되는 등 제도적 틀도 선진국에 크게 뒤처지지 않는 수준으로 혁신됐다. 그러나 한국 경제를 '열린 경제'로 부를 수 있을 만큼 개방 인프라가 갖춰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보듯 농업 서비스 등 취약산업에 발목잡힌 정부의 통상정책은 개방의 원칙과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오락가락하고 있다. 산업현장에 깊게 뿌리내린 노사관계 불안은 외국 기업의 대한(對韓) 투자를 머뭇거리게 한다. 이런 탓에 한국은 교역 규모로는 지난해 세계 13위까지 올라섰지만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올해 49개국을 대상으로 벌인 국가 경쟁력 평가에선 26위에 그쳤다. 특히 노사관계(47위)와 정부 규제(44위) 등이 최하위권에 머물러 개방 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임을 재확인시켰다. ◆ 농업 개방도 시장 원리로 3년여의 진통 끝에 지난 10월 전격 타결된 '한.칠레 FTA' 협상의 가장 큰 쟁점은 농업 개방문제였다. 정치권과 농민의 반발에 등떠밀린 정부는 사과 배 쌀 등 핵심 농산물을 지키는 대신 냉장고 세탁기 등 주력 수출품을 포기해야 했다. 정부의 FTA 확산전략에서도 주요 농산물 생산국인 중국 미국 호주 등은 핵심 교역국임에도 불구하고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제는 농업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겉돌고 있는 통상정책의 전략과 방향을 재정립해야 할 때다. 일단 모든 시장을 연다는 기본 전제를 세우고 국내 업계의 현실을 고려해 개방 시기와 방법 등 세부 전략을 짜는게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성극제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 교수는 "국내 제조업이 전면 개방과 국제 경쟁을 통해 세계적인 기업들과 어깨를 견주는 생명력을 갖게 된 만큼 농업 분야도 개방을 통해 활로를 찾아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 노사관계도 선진국 수준으로 열린 시장경제의 필수 요건 가운데 하나가 외국 기업이 맘놓고 경영할 수 있는 시장환경 조성이다. 그 가운데 한국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대립적인 노사관계 청산이 꼽힌다. 한국에 투자하려는 외국 기업들은 대부분 국내 기업의 강성 노조를 겁낸다. 실제 내년 1월 발효되는 '한.일 투자협정(BIT)' 협상 타결 과정에서 가장 진통을 겪은 쟁점 중의 하나도 '노사 안정' 명문화였다. 노사대립은 경제 개방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외국인 투자유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2000년 최고치(1백56억9천7백만달러)를 기록한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지난해 1백18억7천만달러로 곤두박질친데 이어 올해엔 1백억달러를 밑돌 전망이다. 일각에선 실업률 2∼3%대의 완전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날 것을 제안한다. 정부가 완전 고용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고용과 관련한 각종 규제를 양산하는 바람에 기업 경영에 부담을 주고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키웠고,그 바람에 오히려 일시직 등 비정규직 고용 비중을 늘림으로써 노동자들에게도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 '언어 인프라'도 확충해야 개방 경제로 가는 또다른 관건은 외국인이 불편을 느끼지 않는 생활환경 구축이다. 그 핵심은 내.외국인 간에 자유롭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언어 인프라'다. 다국적기업들은 투자 적격지역으로 한국보다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싱가포르와 홍콩을 선호한다. 심지어 GDP 규모와 인력 수준이 한국에 크게 뒤처지는 말레이시아도 한국보다 선호도가 높다. 자국어는 물론 영어와 중국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어 의사소통이 자유롭기 때문이다. 덕분에 말레이시아는 IMD의 국가 경쟁력 조사결과에서도 한국보다 한 단계 앞선 26위에 올라 있다. 초등학교부터 영어 회화를 의무화하고 고등학교와 대학에선 제2외국어 회화를 필수화하는 등 교육시스템 개혁이 시급하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영어 공용화 제도를 우선 국제자유도시인 제주도나 정부가 추진중인 경제특구 등에 시범 도입한 뒤 전국 대도시로 확대해 나가는 방안을 과감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한영 기자 chy@hankyung.com [ 한경.LG경제硏 공동기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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