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충수업 갈등...일선고교 혼선

보충수업 실시 여부를 둘러싸고 서울지역 일선 고교들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최근 교육인적자원부가 특기.적성 교육 등 방과 후 수업시간 활용을 학교장 재량에 맡겨 사실상 보충수업을 허용했지만 서울시 교육청이 이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일부에서는 교육부와 시 교육청이 교육정책을 놓고 쓸데없는 힘 겨루기를 하고 있어 학생과 학부모들만 골탕을 먹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은 26일 서울시내 고등학교는 앞으로 교과 관련 특기.적성 교육시간에 교과서 진도를 나가는 등 종전 방식의 '보충수업'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학교교육 내실화 방안'을 발표했다. 유인종 서울시 교육감은 이날 "정규수업의 효율성을 높여야만 공교육의 정상화가 이루어진다"며 "학교의 학원화를 막기 위해 밤 늦게까지 진행되는 보충수업과 '0교시' 수업을 금지키로 했다"고 밝혔다. 시 교육청은 이에 따라 특기.적성 교육시간을 주당 10시간 이내로 제한하고 이 시간을 참고서 문제풀이로 활용하는 등 종전 방식의 보충수업으로 편법 운영하는 것을 제한키로 했다. 시 교육청은 이를 지키지 않는 학교에 대해선 학교 운영비 삭감 등 행.재정적 제재를 가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선 학교와 학생들은 교육부가 이보다 앞서 발표한 공교육 내실화 방안에 따라 이미 보충수업을 준비 중이어서 시 교육청의 발표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D고 이모 교장은 "교육부 방침에 따라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중심으로 보충수업을 편성하고 외부 강사도 물색하는 중이었다"며 "도대체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 K고 신모 교장은 "보충수업을 해달라는 학부모들의 요구가 많아 이미 반 편성을 마치고 강의시간까지 확정한 상태로 다음달부터 수업을 진행할 계획이었다"며 "상당수 학교가 보충수업 준비를 마친 상황인데 이제 와서 안된다니 당혹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S고 김모 교장도 "공교육의 질이 명문대 입학자 수로 평가받는 상황에서 보충수업이 허용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교육청의 조치로 학교가 사설학원에 밀리는 현상이 지속될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3 딸을 둔 학부모 강모씨(43.강남구 일원동)도 "근본적인 입시제도의 개혁 없이 보충수업만 금지하는 것은 교육 당국이 현실을 외면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현 상태에서는 보충수업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 이미 많은 수의 학교들이 보충수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파문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교육부의 특기.적성교육 자율화 방침 이후 전국 4백5개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특기.적성교육 운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74.3%가 보충수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이 가운데 일반계 고교의 86.8%는 특기.적성교육을 수능과 관련된 보충수업으로 활용하겠다고 답했다. 홍성원 기자 anim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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