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걸레스님

"반은 미친 듯,반은 성한 듯/사는 게다별들은 노래를 부르고/달들은 장구를 치오/고기들은 칼을 들어/고기회를 만드오//나는 탁주 한잔/꺾고서/덩실,더덩실/신나게 춤을 추는 게다//나는 걸레" 9일 타계한 중광(重光)스님이 1977년 영국 왕립 아시아학회에서 낭송한 '나는 걸레'라는 자작시의 한 대목이다. 스스로를 '미치광이 중'이라 불렀던 그는 이 시를 발표한 이후엔 아예 '걸레스님'으로 통했다. 당시 파계와 기행을 일삼으며 숱한 화제를 뿌렸던 중광에게는 그야말로 딱 떨어지는 호칭이었던 셈이다. 중광은 26세에 양산 통도사로 출가해 한때 조계종 종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천성이 괴팍한데다 살아있는 자신의 제사를 지내는 등의 불도에 어긋난 파계행위 때문에 결국 파문당한다. 자신이 득도한 것도 창녀들과 함께 지내면서였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는 파문에는 아랑곳 없이 시와 서예,그림에 집착하면서 미친 듯한 삶을 살아간다. 특히 중광의 그림은 외국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아 영국의 대영박물관,뉴욕의 록펠러재단 등지에 소장돼 있다. 그는 김수용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했으며,말년에는 선(禪)수행을 하며 달마대사 그림에 심취,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한 '괜히 왔다 간다'는 주제로 달마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한 평생 어떤 격식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혼을 맘껏 누렸던 중광이었다. 경기도 광주에서 토막집을 짓고 작업을 할 때는 "저의 작품은 무공해 식품이올시다. 전 인류 식구들에게 공양 올립니다"라고 외쳤다. 중광은 걸레세척제인 '노란 옥시크린' CF에 출연해서는 "이 세상의 지저분한 것은 노란 걸로 빠는 거다"고 일그러진 세태를 향해 일갈하기도 했다. 중광의 삶은 우리 사회에 신선한 청량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침없는 말투와 기발한 행동,파격적인 의상이 광기(狂氣)로 비쳐졌을지 몰라도 그의 일생은 분명 창의적이었던 까닭이다. 판박이 교육에 사고까지도 획일화된 오늘의 현실에서,중광은 자유분방하고 독특하게 산 인물이었다. 박영배 논설위원youngb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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