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불황타개, 할일 안할일..金秉柱 <서강대 경제학 교수>

아무리 바빠도 행선지와 노선을 챙기고 나서 길을 나서야 한다. 뛰고 나서 생각하는 우리의 나쁜 버릇이 다시 도지고 있는 듯하다. 지구 전체의 경기침체,그것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계 경제의 명암을 가르는 힘을 가진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9월 11일 테러 공격 이전에 이미 경기 후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인하 조치를 연달아 내놓았으나 별무효과다. 테러 이후 경기 부양을 노린 재정정책 논의가 활발하나 그 효과는 두고 볼 일이다. 장기침체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일본은 물론,유럽연합(EU)도 불황의 그늘이 짙다. 동아시아 경제권에서도 싱가포르와 대만은 경제성장이 아예 뒷걸음질하고 있고,홍콩 태국 말레이시아 등의 경제도 극히 부진하다. 다만 중국만이 작년 8.7% 성장보다 다소 낮은 7.5%의 성장을 올해도 예상하고 있는 데다 최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향후 전망이 밝아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작년 8.8% 성장실적에 올해에도 2.5% 정도의 경제성장을 기대하고 있는 한국은 무엇을 구상하고 추진해야 하나? 대중매체 보도를 통해 두가지 목소리가 들린다. 하나는 청와대 주변에서 들리는 소수의 목소리다. 주변 경쟁국들보다는 형편이 나은 편임을 강조해 그간 국정운영을 두둔하는 깐깐한 목소리다. 다른 하나는 여의도 국회와 과천 정부청사 일각에서 나오는 다수의 목소리다. 불황타개와 경기부양을 위해 무언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다분히 조바심이 담긴 목소리다. 요즘에는 거의 잊혀지고 있는 남대문로 중앙은행의 목소리를 굳이 경청한다면 기다려보자는 얘기일 것이다. 진정 우리는 무엇을 어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금융정책부터 생각해보자.지난 수년 간 경기상승국면에서 미국경제를 큰 탈 없이 운용해 이른바 연착륙(소프트랜딩)의 명수로 격찬받은 바 있는 연준리 의장 그린스펀이지만,경기하강기에는 그의 약발이 잘 먹혀들지 않고 있다. 금융정책은 줄이나 끈처럼 당길 때 힘을 받지,밀 때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비유가 있듯이,침체경기를 부양시킬 때보다 경기과열을 진정시킬 때 상대적으로 유효하고,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차가 길고 불확실하다. 특히 현재 미국의 경우 가계부문은 적자누적,기업부문은 과잉설비로 허덕이고 있기 때문에 금리인하 효과가 당장 가시화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의 가계부문은 평균적으로 미국보다 높은 저축률을 유지하고 있어,금리인하가 직접(기회비용 하락),간접(주가상승에 따른 富효과)으로 소비증가를 자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기업부문의 경우는 미국보다도 과대중복투자 된 설비과잉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불황의 본질은 초과생산 과잉공급에 있다. 아무리 생산해도 팔리지 않고 재고가 쌓이는 상황이 불황이다. 불황타개책이랍시고 기존방식의 생산설비를 늘리는 것은 병을 깊게 할 뿐이다. 새로운 수요를 자극하는 것은 신상품 기술혁신 원가절감 등과 연결된 투자여야 한다. 다음으로 재정정책을 살펴보자.정부지출확대는 그 효과가 조세감면보다 국민소득증대 효과가 크다는 장점이 있다. 당면의 문제는 경상비,사회간접자본 확충,사회복지 등 그 내용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이지만 궁극적 문제는 재정수지의 문제다. 요즘 국회 등에서 논의되고 있는 세율조정문제도 장ㆍ단기 재정수지의 고려없이 경기대책수단으로만 생각할 수 없다. 세율인하가 가계소비를 자극하려면 장기예상소득의 변화를 유도해야하기 때문에,개인소득세율 조정은 장기적인 것이어야 유효하다. 반면 기업의 설비투자는 근본적으로 이윤전망,기업만의 자신감,과잉설비 유무,정부규제 및 노사관계 여건 등이 주요결정요인이기 때문에 설비투자를 앞당기는데는 법인세율 인하를 한시적으로 정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유효하다. 그래도 근본적인 문제로 남는 것은 세율인하로 재정적자가 누적되면 국채수익률,즉 금리가 오르고 이는 결국 민간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사실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 환심을 살 갖가지 구상들이 화려한 옷을 갈아입고 등장할 것이다. 뛰더라도 앞뒤를 재고 뛰자. pjkim@ccs.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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