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좌담회] '대우를 어떻게 볼 것인가' .. "비극 되풀이 말아야"

한국경제신문은 대우패망비사 시리즈를 일단락하면서 지난달 30일 편집국 회의실에 전문가들을 초청, 좌담회를 가졌다. '대우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놓고 참석자들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정규재 경제부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는 김우중 대우 전 회장의 세계경영을 보좌했던 권영철 전 대우 세계경영추진단 전무를 비롯해 정갑영 연세대 교수, 주우진 서울대 교수, 성소미 한국개발연구원(KDI) 기업정책팀장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개발연대에서 글로벌 경제로 넘어오는 동안 대우가 우리 경제에 남긴 공(功)과 과(過)를 모두 인정해야 한다"면서 "대우 패망은 글로벌 경제를 살아가는 각 경제주체들에게 큰 교훈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 참석자 ] 성소미 정갑영 주우진 권영철 정규재 ------------------------------------------------------------------ △ 사회 =지난 7월부터 연재해온 대우 패망시리즈는 각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일각에선 '대우에 면죄부를 주려고 쓰는 것이냐'고 했고 어떤 이들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대우를 한번 더 죽이려는 것이냐'는 반응도 없지 않았습니다. 과연 대우를 어떻게 봐야 하는 것입니까. △ 권영철 전 전무 =자동차와 전자를 앞세워 동구권시장 개척에 나선 대우의 세계경영 전략은 기본적으로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1970년대 섬유와 경공업, 1980년대에 중화학공업으로 일어선 한국 경제는 동구권이라는 이머징 마켓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해야 할 처지였습니다. 만약 1997년 외환위기가 오지 않았더라면 대우의 세계경영 구도가 그토록 허망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주우진 교수 =대우가 경기사이클의 영향을 많이 받는 자동차산업에 수십조원의 돈을 쏟아부은 것이 패착이었습니다. 자동차 산업같은 거대 장치산업은 신차개발이나 판로개척에 워낙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크라이슬러 르노 닛산 등 내로라하는 해외 메이커들도 한번씩 부도위기를 겪지 않았습니까. 대우가 이들 기업과 달랐던 점은 신속한 구조조정을 소홀히 했다는 것입니다. 일본도 5대 자동차 회사중 3개(미쓰비시 닛산 마쓰다)가 독자경영에 한계를 느끼고 경쟁사와 합병이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세계 네트워크에 편입됐습니다. 국내에서는 두산의 경우 주력계열사인 OB맥주를 팔면서 구조조정을 일단락 짓고 최근 한국중공업을 인수해 과거의 '규모'를 되찾은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세계경영은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만 동구권을 겨냥한 경영전략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었다고 봅니다. 현재 동구권 경제는 당초 대우가 예상했던 대로 상당히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성소미 팀장 =대우 32년의 역사를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대우의 성장이나 몰락과정은 시장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우리나라 전체의 성장전략과도 연계돼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도성장기에는 부채가 별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제조업의 수익률이 낮아지고 인건비 상승과 노사관계 악화 등으로 경영환경이 불안해지면서 대우의 확장경영도 어려움을 겪게 됐습니다. △ 정갑영 교수 =대우 패망은 수익보다 확장 위주의 경영을 너무도 오랫동안 펼친데 따른 것입니다. 국내 제조업시장에서도 확고부동한 1위를 차지하지 못했던 대우가 세계 선도기업의 지위를 차지하려는 과정에서 많은 무리가 따랐습니다. 대우가 패망하면서 국민경제에 더 많은 부담을 안기기 전에 '스톱 로스'를 할 수 없었던 정치.경제.사회적 환경도 문제였습니다. △ 사회 =대우는 필연적으로 패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까. 아니면 위기를 조금 더 일찍 감지하고 구조조정을 서둘렀다면 막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까. △ 권 전 전무 =대우의 패망과 구조조정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입니다. 김우중 전 회장은 가급적 전체를 다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 자동차도 어떻게든 살리려고 했지요. 다른 계열사들이 부담을 받았지만 세계경영의 중심인 자동차를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대우는 전자 자동차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해 당시 부실기업이었던 프랑스의 톰슨과 르노까지 인수한다는 마스터 플랜을 짜놓기도 했습니다. 만약 이것이 현실화됐다면 대우의 미래는 많이 달라졌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대우로선 IMF 사태가 참으로 불운이었습니다. GM과 결별한 뒤 가용자원을 모두 쏟아부어 독자모델 3개를 내놓은지 1년도 되지 않아 IMF 사태가 터졌습니다. 동시에 금리와 환율이 치솟아 금융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 사회 =확장전략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 권 전 전무 =객관적?재무자료로 볼 때 대우가 욕심을 낸 것은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기업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커가겠다는 꿈도 꿔보지 못한다면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 성 팀장 =핵심역량 부재에서 문제원인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M&A의 주체는 대부분 선도 우량기업입니다. M&A만 한다고 해서 역량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기업가의 도전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 주 교수 =IMF 사태를 계기로 국내 경제는 급속한 속도로 글로벌 경제에 편입됐습니다. 세계 일류를 달성하지 못한 대우의 경쟁력은 무한경쟁에 취약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근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경우를 대비하더라도 일류와 이류의 격차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비단 대우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 기업 전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 권 전 전무 =대우가 일류가 아니라는 말씀을 하시는데,세상에 일류만 살아남는 것은 아닙니다. 일류가 아니더라도 살아남고, 나아가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대우는 그 길을 수출에서 찾았습니다. 김우중 전 회장은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 수출을 늘리면서 돈이 없는 나라는 물건으로 받아오면 된다고 할 정도로 수출을 독려했습니다. 이것이 잘못됐다고 말한다면 변변한 부존자원 없는 우리나라가 무엇으로 세계시장에서 달러를 벌어들입니까. △ 사회 =결과적으로 대우 방식은 실패했습니다. 대우같은 기업이 또 나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대우사태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겠습니까. △ 정 교수 =흑자를 내지 못하는 기업은 결국 전체 사회에 부담을 준다는 사실을 대우가 실증했습니다. 또 빠르게 성장한 기업은 망하는 속도 또한 빠르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대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을 때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대우 몰락과정의 상당부분은 규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경제신문이 실체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해왔지만 앞으로는 권력이나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인 인사들이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아래 조사를 펼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정확한 진실을 알아야 후대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 성 팀장 =대우도 나름대로 장점이 많았던 기업입니다. 김우중 전 회장도 상당한 능력과 자질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우는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림으로써 그동안 쌓아 놓았던 모든 것을 상실해버렸습니다. 거꾸로 대마불사 신화가 깨진 것은 시장의 '성공'으로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 주 교수 =높은 부채비율과 성장 일변도의 경영으로는 무한경쟁에서 견디기 어렵다는 교훈을 얻어야겠습니다. 1990년대 중반 크라이슬러가 사내유보금으로 고배당을 하려하자 주주들이 반대했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기업의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다는 이유였지요. 한국기업들은 항상 적절한 유동성을 갖고 미래의 불확실한 상황에 대비하는 리스크 관리경영을 본격화할 때라고 봅니다. △ 사회 =해외를 떠돌고 있는 김우중 전회장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 정 교수 =대우 방식을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아무 것도 없던 후진국에서 강력한 제조업 기반을 구축하기까지 대우가 기여한 공로도 큽니다. 김 전 회장의 경우 사법적 판단과는 별도로 경영자로서의 재평가 문제는 남아 있다고 봅니다. △ 권 전 전무 =대우 계열사들의 실정법 위반 부분에 대해서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대우는 나라를 위해 기업을 한다는 소명의식을 분명히 갖고 있었습니다. 1990년대 들어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세계화 열풍을 주도한 기업도 대우였고 북방교역을 통해 한반도 긴장완화에도 일조했다고 자부합니다. △ 주 교수 =대우가 국민경제에 많은 부담을 안겨주었지만 대우만 탓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대우 문제는 수많은 재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성장위주 경제정책이나 차입위주 금융관행처럼 주변 환경도 작용한 것이 사실입니다. 정리=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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