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축구, 아시아 신흥강국으로 성장가능성

지난해 시드니올림픽을 통해 세계에 존재를 널리알렸던 동티모르가 이제는 축구를 앞세워 세계 무대에 도전할 채비를 하고 있어 주목된다. 중국축구가 정부의 든든한 지원과 풍부한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는데 40여년이 걸린 가운데 아직 잔디도 없이 먼지가 뿌옇게 피어오르는 운동장에서 볼을 차는 동티모르의 젊은 선수들은 세계무대의 수면위로 훨씬 빨리 뛰어오를 것을 자신하고 있다. 재정지원이 미약해 축구공조차 부족한 상황이지만 크로아티아 출신 이반 첸기치감독은 대표선수들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며 "동티모르 선수들은 아시아지역을 제패할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나는 이들을 `아시아의 브라질선수'라고 부른다"며 동티모르 축구를 평가하고 있다. 동티모르의 축구역사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300여년의 포르투갈 식민지 역사는 동남아시아의 작은 나라를 라틴스타일의 축구국가로 만들어 놓았고 75년 인도네시아가 침공했을 때에도 동티모르군은 전역에서 축구대회가 한창이었다. 24년간의 인도네시아 강점기에 축구는 동티모르 학생들의 저항 수단이기도 했는데, 학생축구대회는 종종 인도네시아군의 작전 정보를 주고받는 지하독립단체의 집회를 겸하기도 했던 것. 99년 동티모르가 독립찬반투표를 벌였을 때 젊은 선수들이 인도네시아의 박해를피해 해외로 떠났다가 돌아왔지만 나라는 온통 폐허였고 수도 딜리의 주경기장은 대규모 피난시설로 바뀌어 있을 정도였다. 2년 뒤 동티모르축구는 회생하기 시작했지만 열악한 재정 형편은 여전했다. 경기장에는 물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편의시설이 미비했고 선수들에게 나누어줄 빵과 계란조차 풍족하지 못했다. 동티모르청소년대표팀이 호주에서 열린 작은 국제대회에 갔을 때 골키퍼 디아멘티노 레옹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온통 푸른 잔디로 뒤덮인 캔버라의 경기장이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하는 상황에서 UN과도정부의 스포츠에 대한 지원도 미비할수 밖에 없었다. 유망선수들이 개인의 기부금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초대 대통령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축구광 사나나 구스마오는 호주평화상으로 받은 상금을 모두 선수들의 해외원정에 쏟아부었고 자신의 아들을 축구선수로 키울 생각이라고 밝히기도했다. 젊은 시절 골키퍼였던 그의 꿈은 당초 60년대 포르투갈 벤피카에서 뛰면서 숱한유럽챔피언십 우승신화를 엮어냈던 에우제비오처럼 되는 것이었으나 축구는 결국 그에게 예상치못한 길을 열어주었다. 축구를 통해 그는 훗날 독립투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된 다른 반식민주의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축구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은 호주의 작은 청소년팀을 맡으면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던 첸기치 감독을 영입하게 했다. 동티모르는 현재 국제축구연맹(FIFA) 회원국 가입을 추진 중이지만 많은 축구발전기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딜리 AP=연합뉴스) anfou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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