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테러 보복 지원과 일본의 딜레마]

미국이 테러 보복 준비를 서두르면서 동맹국일본의 대응과 구체적인 공헌 방법 등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미일 동맹 관계를 외교의 기축으로 삼아온 일본은 지난 91년 걸프전쟁때 가이후도시키(海部俊樹) 당시 총리가 "확고한 미국 지지"를 표명하면서도 결국은 130억 달러의 자금 지원과 전쟁 종료후 소해정 파견에 그쳐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는 등 "쓴경험"을 한 바 있다. 일본 언론들은 미국의 이번 테러 보복 공격에서도 일본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지 않을 경우 다시 비난을 자초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정부의 헌법 해석상 행사가 금지돼 있는 집단적 자위권 등의 헌법 문제가 얽혀 있어 "21세기의 새로운 전쟁"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 지 논의가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공헌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테러 사건 발생후 조지 부시 미 대통령에게 "원조와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일단 지지를 표명한 상태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 보복 공격에 대해서는 명확한 지원 표명 보다는, "(미국의입장을 이해하고 지지한다"는 표현에 주로 머물고 있을 뿐 구체적인 지원 방법 등에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일본의 적극 공헌론은 주로 나카타니 겐(中谷元) 방위청 장관 등이 주창하고 있다. 자민당도 차제에 미국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당내에서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나토)는 공동 보조책을 구체적으로 결정한 상태이기 때문에일본도 빨리 대응책을 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는 걸프전쟁때와 같은 국제 사회의 일본 비난 등이 재연되서는 안된다는지적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15일 각 부처 담당자 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협의중이나 쉽게 의견이 집약되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헌법 문제 미국의 보복 공격을 둘러싼 일본 국내의 논란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일단 모아지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동맹 관계에 있는 국가(미국)가 무력 공격을 받았을 경우 자국(일본)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응전할 수 있는 국제법상의 권리를 말한다. 유엔헌장에 규정돼 있는 권리다.. 자국이 직접 무력 공격을 받았을 경우 행사하는 개별적 자위권과 대별된다. 일본 정부는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 지난 81년 "일본도 국제법상 집단적 자위권을 보유하고는 있으나 헌법 9조(전쟁 및 무력 행사 포기)가 허용하는 자위권 행사는일본을 방어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로 한정돼야 하며, 타국에 가해진 무력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정리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들 역시 미국의 이번 테러 보복 공격을 집단적 자위권이 아닌 개별적 자위권의 문제로 보고 있는 시각이 우세하다. 나토 가맹국인 미국에 대한 공격을가맹국 전체의 공격으로 간주하고 있는 나토와는 다른 헌법상의 제약이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자민당 등 보수 우익 진영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 불가야말로 일본안보 정책의 최대 결함이라면서 "권리는 갖고 있으나 헌법상 행사는 불가능하다"는 정부의 헌법 해석을 변경하거나 헌법 9조를 아예 개정하는 방법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 관철을 모색해 왔다. 고이즈미 총리가 일본은 나토처럼 일체화된 무력 행사를 할 수 없다면서 "헌법범위내에서 미국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집단적자위권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일본의 지원 전망 현재 상황에서 일본이 미군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법으로는 주변사태법이 꼽힌다. 9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주변 사태법이란 일본 주변 지역에서 군사적 충돌 등이발생, 일본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경우 미군에 대해 물자 보급과 인원 수송, 의료 활동 등 광범위한 협력이 가능하도록 한 법률로, 문제는 지원 대상과범위다. 일본 정부는 주변 사태법상의 지원 범위에 대해 제정 당시 북한과 대만 등을 의식, "지리적인 개념은 아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이 법안 심의 과정에서 오부치게이조(小淵惠三) 당시 총리가 "중동이나 인도양 등 지구의 반대쪽은 검토 대상이될 수 없다"고 답변한 것을 감안할 때, 미국이 인도양에서 작전을 전개할 경우 주변사태법을 적용해 미국을 지원하는 것은 곤란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현재 자민당 일각에서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결의가 있을 경우중동 지역의 미군에 대해서도 수송 및 보급 등의 후방 지원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지적도 제기되고 있으나 이 역시 무력 행사로 간주되는 활동을 금지한 헌법 해석 문제가 있기 때문에 결국 의료팀 파견 등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일본 정부 관계자도 "예를 들어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전개되는 군사 행동에 주변사태법을 적용하는 것은 상당한무리가 뒤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이번 테러 보복 공격의 경우 다국적군이 육해공군을 동원해 이라크를 공격했던 걸프전쟁과는 양상이 다를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이 당장일본에 자금과 인력 공헌을 요구해올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기도 하다. 일본은 그러나 미국의 `보복 전쟁'이 장기화되거나 확산될 경우 미국이 일본에물자 및 자금 협력, 수송, 자위대의 경계 활동 협력 등을 요구할 가능성은 충분히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관계자들은 이와 함께 `테러 집단'이 제2의 공격을 감행하고 그 대상국가가 미국에 국한되지 않을 경우에는 양상이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본 정부와 여당은 이번 테러 사건을 기화로 주일 미군 기지가 무력 공격을 받았을 경우 자위대가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유사 법제나 자위대법 개정안 등의 국회통과를 오히려 서두르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도쿄=연합뉴스) 김용수특파원 ys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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