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우먼] (11) '외환딜러' .. 수십만달러 쥐락펴락

"0.1초의 승부사"

외환딜러는 순간의 판단에 따라 수십만 달러의 거금을 손에 줬다 내줄 수 있는 직업이다. 하루 종일 초긴장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 흐름을 꿰뚫어 읽으며 순간순간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하는 부담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외환딜러는 그래서 "피를 말리는 직업"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인 이 분야에서도 여성의 활약은 예외가 아니다. 외환은행의 외환딜러 황윤정(36) 과장.

아침 6시 잠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먼저 컴퓨터와 TV를 동시에 켠다.

인터넷과 TV 뉴스를 통해 나스닥 다우존스 등의 미국 증시와 역외 시장에서의 원화 가격을 체크하기 위해서다. 회사로 가는 지하철안에서도 황 과장은 경제신문의 구석구석을 뒤진다.

밤새 벌어진 국내외 상황뿐만 아니라 반도체 가격,유가 등의 변화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정보수집은 모두 그날의 환율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기 위해서다. 오전 8시50분 그는 국내외 시장에서 오늘의 환율을 전망하는 회의에 참석한다.

이때부터 황과장은 "오늘의 매매전략"을 그리기 시작한다.

오전 9시30분.외환 시장이 열렸다.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황 과장은 갑자기 전화 수화기를 든다.

"1천2백60에 비드(bid) 500".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컴퓨터 화면을 응시한다.

잠시 후 또다시 수화기를 든 그는 "1천2백70에 오퍼(offer) 500"을 외친다.

불과 수분 사이에 황 과장은 5천만원의 이익을 챙긴다.

5백만달러를 달러당 1천2백60원에 샀다가 1천2백70원에 되팔아 달러당 10원씩의 차익을 남긴 것이다.

시장이 끝난 오후 4시30분.오늘 하루의 결과를 살펴본 그의 얼굴엔 살짝 미소가 비친다.

하지만 황 과장은 긴장을 풀 새도 없이 역외 시장에서의 원화 움직임을 체크한다.

한국 시각으로 오후 4시면 런던 외환시장이 시작되기 때문.

오후 5시30분, 그날 하루 동안의 매매결과를 정리하고 내일의 환율 변화를 예상하는 데스크 회의에 참석하고 한 뒤 일과를 마무리한다.

현재 국내엔 분초를 다투는 외환딜러가 2백여명에 달하고 있다.

이들 딜러들은 한빛 조흥 외환 신한 한미 하나 산업 등 은행과 종합금융사 등에서 일하고 있다.

그 중 여성은 10여명에 불과하다.

아직 여성에겐 미개척분야라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4년째 외환딜러로 일하고 있는 공정아(28.국민은행)씨는 "객관적인 자료를 중심으로 시장에 외화를 매도,매수주문을 내는 외환딜러라는 분야는 남녀간 성차별이 있을 수 없는 직업"이라고 설명했다.

외환딜러라는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성취감이다.

몇분 만에도 거액의 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쉽게 돈을 잃을 수도 있다.

하루하루 팡팽한 긴장감을 감수하고 지내야 하지만 정확한 판단과 빠른 결정을 무기로 자신만의 성취감을 얼마든지 맛볼 수 있다.

최지혜(29.외환은행)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긴장하고 지내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재미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외환딜러가 되려면=외환딜러는 특별한 자격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직업이다.

은행 등 금융기관이나 수출입업체 등 기업에 취직해서 딜러를 지원하거나 자질을 인정받아 딜러 역할을 부여받는 게 딜러가 되는 가장 보편적인 길이다.

현재 금융연수원은 외환딜러 과정을 개설해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코스를 밟는게 필수 조건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공인된 국제외환딜러 자격증을 갖고 있거나 경영학석사(MBA)나 경제학 석.박사 출신들이 딜러로 특채되는 경우도 있다.

전공 제한은 없지만 대학의 상경 계열출신이 유리하다고 전문가들은 밝히고 있다.

끊임없이 변하는 국내외 경제 정치 상황을 해석하고 판단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경제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 상황의 변화를 통계 수치로 읽고 이것이 외환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가름해야 하는 만큼 수리적인 감각도 중요하다. 대부분 경제정보가 영어로 전달된다는 점에서 어학 실력도 필수. 영국 시티대학에서 재무학 석사를 받고 딜러를 하고 있는 정필금(28.외환은행)씨는 "외환딜러는 순간적인 판단력과 함께 꾸준한 자기 개발이 필요한 직업"이라며 "여자의 경우엔 두둑한 배짱도 기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길덕 기자 duk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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