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감시대] (194) 제2부 : IMF시대 <5> 증오심 (2)

글 : 홍상화

백인홍은 권혁배가 그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운동으로 그가 지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왜 우리의 지식인이 용기가 없다는 거야? 그들은 군사독재와 용감히 싸웠잖아?"

"그것은 용기가 아니야.대부분 자신의 입지를 위해 시류에 편승한 거야.돈을 써야만 교수직에 임명된다는 것 백 사장도 들어서 알고 있잖아.그래도 그자들이 반기를 든 적이 있어? 재단이 무서워서 그런 거야.노동자의 과격투쟁이나 무리한 요구에 제대로 반론을 편 적이 있어? 기껏해야 적당히 양비론·양시론을 펼치며 지면만 낭비했지.대중이 무서워서 그런 거야.그들은 정치인보다 더 저질이야.정치인들은 솔직하게 자신들이 잡놈들이라고 다 인정하지.우리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국회의원이 선거에서 떨어지면 개도 쳐다보지 않는다고 말하거든"

권혁배는 점점 화가 치미는 듯 소주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평소의 권혁배와는 달리 화가 나 있는 그를 대하니 백인홍은 오히려 호감이 갔다.

자신이 이제 노조와의 협상 문제로 사업하는 데 환멸을 느꼈듯이 권혁배도 대선으로 어지간히 시달린 듯했다.

"나 앞으로 사업 집어치우기로 했어.한국에서 사업하는 사람은 바보야"백인홍의 말에 권혁배가 너무 놀라 눈만 동그랗게 뜬 채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다.

"사업하는 첫째 목적은 적어도 회사의 오너로서 직원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거야.그러나 한국에서는 노동자에게 오너를 향해 증오심을 불어넣는 막강한 세력이 있어.재벌기업이 아니고는 당할 재주가 없지.우리나라 노조가 세계에서 가장 투쟁적이라는 말 들었지? 그리고 우리나라 기업은 차입경영에 의존해 노조와 장기간 싸울 기력도 없어"

"그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는 세력의 정체가 뭔데?""사회에 대한 적의를 가진 일부 특정 부류야.겉으로는 양심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사회에 대한 적개심뿐이고,핍박받는 층을 해방시켜준다고 하지만 헛말이고,오히려 증오심만 키울 뿐이라고….무조건 세상을 뒤엎자는 것이 그들의 목적인데,결국 희생당하는 것은 노동자들이야.기업이 망하면 생계수단을 잃는 사람은 노동자들이니까"

"그들을 맑스주의자로 분류하면 어떨까?"

권혁배가 말했다.

"무슨 얼어죽을 맑스주의자야! 그들은 단순한 파괴분자야.그렇다고 신념과 용기가 있는 테러리스트도 아니야.자기들은 뒤에 숨어 있고 불쌍한 사람들을 시켜 파괴를 시도하지"

백인홍은 열변을 토하느라 목이 말라 소주를 연거푸 두 잔이나 마셨다.

그래도 분을 삭일 수 없는지 씩씩거렸다.

"사업을 안하면 그럼 뭐 할 거야?"

"정치를 할 거야….나의 목적은 단 하나! 위선자들의 가면을 벗기는 거야"

백인홍의 말을 끝으로 그들 사이에 침묵이 찾아왔다.

"회사에 무슨 일 있었어?"권혁배가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백인홍은 앞에 놓인 소주를 들이켠 후 "지난 2개월 동안 우리 회사에 이런 일이 있었어…"라는 말을 시작으로 그간의 사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