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李총리의 딜레마

"이한동 총리는 오늘 특별한 일정이 없어 청사에는 안나오시고 공관에만 계실겁니다"

개각을 하루 앞둔 6일.총리실 공보비서실 직원이 기자가 전화한 이유를 알고있다는 듯 ''준비된'' 답변을 했다.이 총리는 개각에 무관심한 것일까.

물론 정반대다.

평소 "자민련의 능력있는 분들의 입각을 적극 추진하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표명해온 이 총리다.그럼에도 이를 드러내놓고 추진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그 속내야 어찌됐든 자민련 김종호 총재대행이 입각거부 검토를 선언한 마당에 괜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한동씨는 자민련 총재이기에 앞서 국정을 총괄하고 대통령을 보좌하는 국무총리다.헌법상으로도 총리에게는 대통령에게 각료임명을 제청할 권한이 있다.

각료임명제청권은 총리가 제청서류를 대통령에게 단순히 제출하는 요식행위만을 뜻하는게 아니다.

자민련몫 한둘을 챙기는 일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대통령과 머리를 맞대고 적임자 발굴에 숙의에 숙의를 거듭해야 하는 책임이 동반된 권한이다.

그러나 이 총리는 개각 전날에야 청와대 한광옥 비서실장으로부터 입각대상을 통보받고는 야심한 시각에 김종필 명예총재의 청구동 자택을 찾았다.

이렇게 총리가 운신의 폭이 좁다 보니 총리실 직원들로부터 당장 국무총리제 ''무용론(無用論)''이 나온다.

사실 국무총리제는 대통령제하에서는 이례적인 제도다.

내각제의 총리처럼 권한이 막강한 것도 아니고 미국의 부통령처럼 단순히 보좌기능만 수행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리다.

더구나 친정인 자민련 의석이 17석에 불과해 원내교섭단체 구성도 안된 상태여서 이 총리는 기가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새로운 내각이 출범했다.

사회전반에 확산돼 있는 개혁피로감을 씻어내고 국정운영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과제가 이 총리 앞에 놓여졌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이 총리는 개각 당일인 7일 저녁 외교안보 경제 등 각 부문 주무장관들을 총리실로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다.이 총리의 정치력 행정력이 앞으로 어떻게 나타날지 관심이 아닐 수 없다.

김병일 정치부 기자 k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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