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아직도 먼 '은행선진화'

후임 국민은행장 선임문제를 놓고 금융감독위원회와 은행측이 마찰을 빚고
있다.

지난 24일 금융감독위원회는 외부인사들로 경영자선정위원회를 구성,
헤드헌터의 도움을 얻어 3~4명의 후보를 물색한후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행장추천위원회에 올려 최종 행장후보를 선정하겠다고 발표했다. 행장추천위원회가 곧장 후보를 추천하던 기존 방식을 바꾼 것이다.

은행측은 노조를 중심으로 금감위가 특정인을 은행장으로 만들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금감위는 "행장 선임을 투명하게 한다는 차원에서 선임과정을 밝힌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은행가에서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송달호 행장이 사의를 표명하기 몇달전부터 금감위가 특정 인사를 후임으로
밀고 있다는 설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장 선임을 둘러싼 진통을 바라보면서 "한국 은행들의 선진화는
아직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은행의 최고경영자(CEO)를 뽑는 과정이라면 상식적으로 "누가 은행을 가장
잘 이끌어 나갈수 있느냐"가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

그러나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의 능력보다는 정치판처럼 지역안배니
누구누구 인맥이니 하는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들은 "은행이 발전하기 위해선 능력있는 외부인사가 들어가
개혁을 할 필요가 있다"고 공공연히 말해왔다. 맞는 이야기일수 있다.

그러나 소문대로 특정인을 밀어 넣기 위해서라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은행도 무조건 "내부인사" 원칙만 고집할게 아니라 능력있다고 검증받은
사람이면 받아들일수 있다는 개방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요즘은 분야를 막론하고 최고 경영자(CEO)의 비전과 능력이 기업 발전의
핵심으로 꼽힌다.

국민은행은 소매금융분야에서 주력해온 덕분에 IMF 경제위기라는 홍역을
비교적 가볍게 치러낼 수 있었다.

하지만 "선도은행"으로 부상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국제분야나 기업금융이 약하다.

유난히 보수적인 분위기 탓에 참신한 인재들도 상대적으로 적다는 평을
듣고 있다.

공정한 절차로 능력있는 은행장을 뽑아야만 국민은행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

내외부 여부를 다툴 만큼 여유가 있는 게 아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28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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