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중국의 Y2K 사재기

요즘 중국 대도시에서 양초가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올연말쯤 각 발전소의 컴퓨터 중앙통제시스템에 고장이 생겨 장기간 전력공급이 중단될지 모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다. 양초뿐만 아니다. 베이징(북경)시내 백화점과 할인매장에서는 라면과 통조림 밀가루 등 수개월 이상 보관이 가능한 제품의 판매량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누구는 무엇을 얼마나 사뒀다더라는 얘기를 접한 중국인은 덩달아 물건을 사러 나서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일부 시민들은 비상용 생필품의 사재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수군댄다. 좀처럼 내심을 드러내지 않는 중국인들을 호들갑떨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Y2K(컴퓨터 2000년 연도인식 오류문제). 이들은 최근에 발생한 한 사건으로 Y2K혼란의 우려가 현실로 들이닥친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 베이징 시민이면 누구나 아는 힐튼호텔의 전산망이 최근 2000년 연도인식에 오류를 일으켜 5시간 가량 중단된 것이 계기가 됐다. 호텔 야근직원이 컴퓨터작업을 하던 중에 데이터베이스와 서비스관리 시스템이 멈춰선 것이다. 호텔측은 컴퓨터가 작동되지 않은 시간동안 투숙객들의 각종 시설이용비와 전신 전화요금 등을 집계할 수 없게 되자 수작업으로 체크아웃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베이징 청년보는 이 사건의 발생에서부터 서버제공업체 관계자들이 현장에 와 데이터베이스를 수정해 정상으로 가동하기까지를 비교적 상세히 보도했다. 시민들에게 사실을 곧이곧대로 알려 억측을 불식시키자는 의도였을 게다. 하지만 결과는 딴판으로 나타났다. 정보유통이 원활하지 못한 중국인들 사이에서 사실 자체가 왜곡된채 그 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는 힐튼호텔외에 2건이 더 터졌다느니, 행정기관과 사회간접시설 통제시스템도 고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느니 하는 풍문이 떠돈다. 이런 분위기 속에는 Y2K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깔려 있다. 중국당국이 시민들의 이런 불안심리를 모를리 없다. 중국정부는 최근 각 행정기관과 국유기업에 오는 6월말까지 Y2K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신식(정보)산업부 내에 Y2K전담반도 설치했다. 중국 외교부는 한국 미국 일본 등 각국의 Y2K 대책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당국이 총력을 기울여 Y2K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는 이 순간에도 양초를 찾는 사람이 많다는데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2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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