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전세살이

광무4년(1900) "한성신보"에 실린 통계표를 보면 서울의 인구는 20만9백22명, 주택은 4만2천8백70호로 되어 있다. 호당 인구가 4.7명 밖에 되지 않는다. 당시 주택은 초가가 69%였다는 것으로 미루어 주거조건이 썩 훌륭한 편은 아니었다 해도 대체로 1가구1주택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유일한 자료다. 그뒤 1926년 처음나온 "조선연감"에는 서울의 주택부족률이 5.80%로 나타나기 시작해 33년에는 11%로 뛰어 오른다. 그리고 44년에는 40%라는 엄청난 수치를 보인다. 생존한 서울토박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30년대 이전에 서울에는 이미 사글세와 전세가 많았다. 일제시대에 들어와 서울 등 대도시의 인구가 폭증하면서 이런류의 주택임대관행이 자리잡았다. 조선시대에는 움막을 짓고 살더라도 1가구1주택이었다. 또 남의집 행랑살이를 하면서 일을 거들었지만 집세를 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6.25이후 서울의 주택사정은 더 나빠졌다. 60년의 주택부족률은 42%였다. 80년대초부터 본격적으로 아파트붐이 일기시작했다. 주택경기의 과열과 침체가 반복되면서 주기적으로 투기바람이 불었다. 집값은 터무니없이 오르고 한 번 오른 집값은 떨어질 줄 몰랐다. 전세나 사글세도 덩달아 올랐다. 전세값이 집값에 거의 육박하는 기현상도 보였다. 집없는 자의 설움은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간격을 벌려놓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와 같은 식의 전세란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의 경우도 대개 1년치 월세정도의 보증금을 내고 매달 월세를 내는형식이다. IMF사태이후 상황이 반전돼 전세값이 폭락하고 거래마져 제대로 이루어지지않아 전세금반환소송이 급증하고 있다. 정부도 세입자의 고통을 덜어주기위해 세든 집에 살면서도 경매신청이 가능한 새 법안을 마련했다. 국토개발원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세를 준 집주인의 70%가 전세금을 받아 "새집마련"에 쓰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집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집을 가장 큰 재산으로 생각해 왔다. 집문서는 미래의 보험증서처럼 여겼다. 이번기회에 이런 의식만이라도 개혁한다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 될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0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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