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공황 오는가] (6) '위기의 은행' .. '악순환 수렁'

금융위기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은행의 위기다. 은행이 외화 원화와 관련한 본연의 금융중개기능을 상실함으로써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 기업들은 부도 도미노에 직면해 있다. 주가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는 다시 부메랑이 되어 은행을 덮치고 있다. 악순환의 상승작용이라고나 할까. 은행들은 사실 현재 전방위적인 포위망속에 갖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실채권의 증가는 통제가능한 수준을 벗어난 상태고 하염없이 내리막길을 치달닫는 주가에 대해서도 은행들은 마치 고사를 지내듯 바라만 볼 뿐이다. 올들어 부실화된 대기업은 모두 10개. 한보철강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 기아 쌍방울 태일정밀 해태 뉴코아 등 한때 내로라 했던 기업들이다. 은행들은 이들 기업에 모두 15조1천5백억원의 여신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25개 은행들의 작년도 업무이익 4조4천억원의 3.4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은행장사에서 벌어들인 돈을 대손충당금 쌓는데 다 밀어넣어도 모자랄 판이다. 더구나 미수이자증가 등으로 은행들의 올해 업무이익 신장세는 답보상태에 그치고 있다. 주식평가손은 어떤가. 지난해말 25개 일반은행이 보유한 주식의 장부가는 11조2천2백86억원이었던데 비해 싯가는 6조2천6백25억원에 불과, 평가손은 4조9천6백21억원에 달했다. 종합주가지수가 6백51.22포인트를 기록할 때 그 정도였다는 얘기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 무려 20% 가까이 주가가 빠져 있다. 또 은행들은 은행감독원의 지침에 따라 연말결산때 유가증권평가충당금을 50%까지 쌓아야 한다. 작년 30%보다 20%포인트 더 늘어났다. 단순계산을 하더라도 은행들이 추가 적립해야 하는 유가증권평가충당금은 2조원을 넘어선다. 이러다보니 올해 흑자를 낼 은행은 25개 일반은행중 국민 하나 신한은행 뿐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은감원이 충당금적립비율을 하향 조정,일부은행을 흑자로 만들수는 있겠지만나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밖엔 되지 않는다. 금융산업의 국제화가 진전돼 해외의 전문분석가들도 알 것은 다 알고 있기때문이다. 은행들의 무더기 대규모 적자가 은행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적자는 자기자본 축소로 이어지고 이는 곧장 BIS(국제결제은행)기준 자기자본비율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간신히 8%이상의 BIS비율을 유지하고 있는게 국내은행들의 현주소인데 자기자본축소는 당장 이 비율을 8%이하로 떨어뜨릴게 분명하다. 그 다음의 파장을 예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해외차입이 아예 두절되고 국내은행이 발행한 해외신용장을 외국에서 받아주지 않는 사태가 생겨난다. 금융시스템이 총체적으로 마비될 수 있는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악순환의 고리를 차단하고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선 무엇보다 부실채권의 정리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관점에서 오는24일 출범하는 부실채권정리기금은 은행경영에 다소 숨통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정리기금은 올해에만 4조-4조5천억원의 은행부실채권은 매입할 것이라고 한다. 액면 그대로만 본다면 그만큼 은행부실채권이 감소할 것이므로 더할 나위없이 좋다. 그러나 은행들에겐 또다른 고민이 있다. 정리기금이 부실채권 매입가격을 턱없이 낮게 책정하고 있어서다. 정리기금은 담보부채권을 법원경매사정싯가의 69.1%로 매입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은행들은 78% 수준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담보채권에 피해서는 부실채권액의 1%에 사겠다는 정리기금측과 5%-10%수준은 돼야 한다는 은행측 주장이 팽팽히 맞서 있다. 회계처리에 있어서도 은행들은 부실채권 매각으로 인한 손실을 이연자산으로 분류, 3-5년에 걸쳐 상각할 수 있도록 해주길 바라고 있다. 한꺼번에 거액의 대손상각을 하도록 하는 것은 은행에 회생불능의 치명타를입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난관을 극복하고 부실채권의 멍에를 벗어던져야만 은행들의 금융중개기능은 다시 살아날수 있을 것이란게 금융계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5일자).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