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의사의 윤리 .. 남소자 <나산부인과 부원장>

현대의학에서는 이제 솔로몬의 지혜라도 빌려와야 할 것같다. 신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생각, 한껏 방자해진 현대의학은 인구를 멋대로 조절하고 남녀를 가려 낳는 사악한 의술까지 불러 성비 불균형을 일으켰다. 복제동물을 양산하는 지경에 이르면 인간이 인간을 생산, 전쟁에 이용하고 노예로 부려먹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때문에 세계의학계는 어떻게 하면 의사의 윤리 교육을 잘시킬수 있을까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제도나 법을 만들기는 쉽다. 그러나 이들 제도나 법을 개개인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것이 인간삶의 특징이다. 얼굴이나 신체조건이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개개인의 욕망 또는 피치 못할 사정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선서를 하고 인술을 편다고 자부하는 의사도 살면서 겪는 갈등과 좌절에 자칫 윤리의식을 망각하는 수가 있다. 생활환경이나 전통의식에 맞지 않아 그에 따르지 않으면 이단자가 되기 십상인 경우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임신중절수술이다. 생명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는 윤리의식에 젖어있는 산부인과의사에게 이 수술은 심히 이율배반적이다. 법률에는 산모의 생명이 위험할 때등 몇가지 허용조항이 있지만 이 몇가지만으로 수천만가지의 이유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 근친상간이나 성폭행에 의한 임신, 태아가 명백히 기형아임이 판명된 경우등 출산뒤 산모나 그 생명이 겪을 비극은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막을 방법이 없다. 여중생엄마, 가출한 청소년들의 성, 버려지는 아기등 붕괴돼가는 성도덕 부산물에 대한 대책이 산부인과 진료실안에서만 세워질 수는 없다. 제도나 법률로 인간의 섹스를 일일이 통제할 수도, 의사의 윤리만으로 이들 비극을 막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솔로몬왕왕이 환생한들 해결이 가능할까.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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