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기업인] '패션업계 사장' .. 멋의 마술사

경기의 좋고 나쁨에 따라 스커트끝이 오르락내리락한다는 것은 정설이다. 올 가을이나 겨울에는 꽁무니가 다 보일정도로 스커트가 올라간다는 얘기가있다. 이미 일본에서는 한참 유행이 불었는데 조만간 한국에도 상륙한다는 것이다. 이런 소식은 원단업체 사장들을 뒤숭숭하게 한다. 스커트길이가 짧아지면 원단수요가 줄어들 것 아니냐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만약 올라가는 스커트처럼 경기도 상향곡선을 그린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도 있지만 말이다. 패션업체 사장들은 어떨까. 지난주 열린 SIFAC(서울국제패션컬렉션)에서 일부 패션업체는 올라갈데까지 다 올라간 스커트들을 선보여 소문의 진실성을 검증(?)해줬다. 패션업체 사장들은 이처럼 유행을 리드하는 재미에 산다. 올 F/W(가을 겨울)패션경향은 클린한 표면감과 깊이있는 다크 톤의 색상들이 리드할 거라는 둥, 내년 S/S(봄 여름)에는 가볍고 부드러운 느낌의 로맨티시즘이 부활할 거라는 둥 미리 1년 정도는 훤히 내다보고 매사를 준비한다. 파리컬렉션이다, 밀라노컬렉션이다 패션선진국들의 유명한 패션쇼들을 두루 섭렵하면서 디자이너들 못지 않게 세계패션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지난 95년 TV광고에도 직접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LG패션의 신홍순 사장은 국내외로 하 쏘다니다보니 직원들도 어떤때는 한달에 한번 보기가 쉽지않다고한다. 그들은 옷잘입는 베스트 드레서이기도 하지만 작업복을 입고 근무하는 수수한 이웃집 아저씨같기도 하다. 10대들의 마음을 읽기위해 디스코테크와 록카페를 찾기도 하고 압구정동 청담동 로데오거리를 서성거리기도 하는등 본의아닌 "날라리"역할도 해야하는그들이다. 주마다 패션동향을 보고받고 체크하지만 몸으로 느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가하면 클래식음악과 미술에 심취하고 현대철학을 논할수 있는 교양 역시 패션경영인들의 필수 소양이다. 다시말해 전쟁과 기아 마약 환경 등 세상의 온갖 고상하고 천박하고 아름답고 추악한 문제들에 대해 폭넓은 관심과 지식을 가진 천의 얼굴의 소유자가 바로 패션업체 사장들인 셈이다. 얼핏보면 천하에 이런 한량이 없다. 그러나 알고보면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세상을 향한 고감도 안테나를 세워두고 녹슬지 않도록 노상 갈고 닦아야 하는 사람들이 이들이다. 지금 가장 고민되는 문제는 불황의 긴 터널이다. 두벌 사입던 사람은 한벌로 줄이고 한벌 사입던 사람은 옛날 입던 옷을 찾아 옷장을 뒤지고 있다. 이처럼 소비가 줄다보니 업계도 주름이 잡히지 않을 수 없다. 만들어놓기만 하면 팔려 1백%이상 매출이 신장되던 호시절이 먼 옛날이 아니다. 그러나 상황은 변했다. 수입개방으로 샤넬이다, 피에르카르댕이다 외국브랜드들이 홍수를 이뤄 소비자들의 눈도 높아질대로 높아져있다. 웬만큼 잘만들지 않고는 눈에 차질않는다. 여기에다 턱없이 올라있는 옷값도 부담이 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원가의 3~3.5배 정도로 옷값을 책정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고임구조여서 원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고 여기에 일방적으로 몇배의 가격을 매기다보니 외국브랜드와도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올들어서는 새 브랜드를 내놓자마자 세일에 들어가는 웃지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패션업계 사장들이 이같은 어려움을 꼭 비관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이 업계의 체질을 바꾸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동안 옷값에 거품이 많았습니다. 먼저 소비자들이 이러이러한 옷을 어느 정도의 가격에 입으려 할 것인지 조사하고 나서 그에 맞춰 다른 요소를 조절해야겠지요"(김주동 (주)신원사장) 고객만족의 3요소로 품질 디자인 가격을 꼽자면 그동안 업계에서 가격이라는 요소를 특히 등한시해왔다는 반성이다. 삼성물산 에스에스의 원대연 대표도 옷값을 떨구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등 거품빼기는 조만간 업계의 큰 흐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길게 보아 패션선진국이 되려면 품질과 디자인도 보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때문에 패션업체 사장들은 뛰어난 디자이너들을 양성하기 위한 방안에도 깊은 관심을 쏟고 있다. 신원은 종전에 국내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던 에벤에셀 디자인공모전을지난해부터 국제디자인공모전으로 확대, 여기서 뽑힌 디자이너들에게는 프랑스로 2년 연수를 보내주고 있다. LG패션은 프랑스에서도 규모가 크다고 평가되는 국제신인디자이너콘테스트를 한국대회와 본선대회로 나눠서 주최, 국내 신인디자이너를 발굴.육성하고 있다. 디자인에서 경쟁력을 얻게 되면 우리 브랜드들이 이탈리아 프랑스 등 패션본고장에서 잘팔리는 브랜드로 돌변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렇게 되면 LG패션 신홍순 사장 말대로 한국도 패션으로 기억되는 나라가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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