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산업구조조정의 방향 .. 윤창호 <고려대 교수>

얼마전 통상산업부는 우리경제의 제조업에서 경공업이 차지하는 비율이대만은 물론 일본보다도 낮다는 자료를 발표했다. 중화학업종내지는 첨단산업으로의 외형상 구조조정이 동아시아의 다른 어느 경쟁국보다 빠르게 진전된 결과이다. 그러나 우리경제에서는 1993년이후 작년까지 경상수지의 적자폭이 계속증가하여 수출경쟁력이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쇠퇴하고 있는 반면 같은 기간 대만이나 일본은 엄청난 규모의 무역수지흑자를 기록하여 우리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산업구조조정이 재벌기업의 주도로 자신들의 경쟁력을 향상시켜 좀더많은 이윤을 얻고자 하는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왜 이러한 결과가 초래된 것인가. 기업들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렵게하는 제도상의 왜곡때문인가,아니면 그들에게 제공된 사회경제적 인센티브체제가 잘못되어 있었기때문인가. 미국 노동부의 통계에 의하면 1980년 한국과 대만의 제조업 근로자들이 받는 시간당 임금은 대략 1달러정도이고 일본은 5.5달러였다. 1993년 한국근로자는 4.93달러이고 대만은 5.19달러, 그리고 일본은 16.16달러에 이르렀다. 이기간 한국과 대만의 임금상승률은 비슷하고 모두 일본의 상승률을 앞질렀지만 일본근로자들의 임금은 이들나라 임금보다 세배이상 높은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동비용부담을 두려워하고 일본과 대만보다 빠른 속도로 탈경공업화를 서둘렀다. 이자율이 일본과 대만보다 높아 자본비용부담이 더 크다는 불평하에서도이러한 산업간 구조조정방향에 대부분 기업들이 수긍하고 동참했다. 사실상 이들 모든 주력기업들이 중화학내지는 첨단기술산업으로의 업종전환을 서두르는 분위기에서는 경공업에 남아있는 개별기업들이 미래의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고 이들도 서둘러 대열에 동참하게 되는경향이 나타났다. 경공업에 대한 기술투자는 자연 소홀히 하게되고 이 부분에서 우리의경쟁력은 점차 쇠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공업에서의 수출 경쟁력감소를 상쇄시킬만큼 첨단장치산업에서의 생산성이 아직 증가하지 못하고 있어 제조업전반의 생산성증가율이경쟁상대국보다 낮아지고 수출경쟁력이 약화된 것이다. 물론 우리가 겪는 구조조저의 피해가 단기적인 휴유증에 불과하고 21세기에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필연적인 절차라면 그 이상 다행스러운 일이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낙관적 견해를 뒷받침할만한 조짐은 나타나지 않은것 같다. 과거 60년대나 70년대에서는 당시의 경공업기술 수준에서 필요한 양질의노동력이 비교적 풍부하게 공급됐었다. 따라서 자본이 희소한 상태에서 경공업에 대한 투자의 수익률이 선진국에비해 월등히 높게 나타나고 우리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기업이 집중투자하고 있는 첨단기술수준에 걸맞는 양질의 노동력이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설비만을 늘리면 투자수익이 높지않고 총요소생산성이 증가하기 어렵게 된다. 선진국에서처럼 첨단기술이 개발되고 확산되기 위해서는 집념과 끈기를 가지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자유스럽게 독창적인 사고를 하고 연구의 결실을용이하게 상업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또 이러한 역할을 할수 있는 계층이 사회의 저변까지 두텁게 포진할 수 있도록 과학이 생활화 될 수 있는 사회교육도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현실이나 정부규제의 난맥상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인적자본의 확충은 아직 요원하다. 따라서 첨단장치산업으로의 무분별한 투자에 대한 사회적 수익률이 쉽게개선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또 아직은 이러한 기술들이 뿌리를 내려 토착화되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는 너무 간단히 경공업을 버리고 있는지 모른다. 경공업기술들은 첨단산업보다는 토착화시키기 쉬웠을 것이다. 우리에게 토착화된 기술을 토대로 설비도 개선시키고 정보통신의 이미 알려진 기술을 경공업분야에 도입해 식품 섬유 가죽 가구 등 경공업의부가가치를 얼마든지 증대시킬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의 방향이나 속도의 완급은 기업들의 사려깊은 판단의 결과로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나 이러한 판단을 도출하기위해서는 업종전환의규모와 시기 등 타당성에 대해 전문적 식견이 존중되는 여과장치가필요하다. 부채비율이 높은 재무구조하에서 소유가 집중되면 무분별하게 제국건설의야심을 펼치는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전문경영인에 의한 지배구조가 정착되기 어렵다. 한보사태가 좋은 예이다. 우리기업의 소유와 지배구조로는 첨단장치산업의 투자를 감당하기 쉽지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보수적으로 일본과 같은 선진국들의 발전경로만을 그대로 답습할 필요는 없다. 그런 방식으로는 이들과의 격차를 줄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당연히 과거에 시도되지 않았던 첨단기술에의 투자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우리는 기술수준이 높은 나라보다 더 큰 투자위험을 부담하게 되는데 이러한 위험을 분산 흡수할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하다. 불확실성을 줄일수 있는 기술.경영분야의 전문인력 확충 및 이들의 참여도아직 미흡하고 금융.노동시장도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구조조정의 속도를 조절하고 향후 첨단기술에 도전하기 위한 제도적미비점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 이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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