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악화] 최근 노사관계를 보는 재계의 '눈'

지난해부터 안정세를 보이던 국내 노사관계가 6월들어 갑자기 불안해지고있다. 만도기계와 기아자동차가 지난 17,18일 각각 파업에 돌입한데 이어 서울지하철 한국통신 조폐공사 지역의보 부산교통공단 등 공공부문노조도 20일연대파업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서울지하철 노조는 18일 전면파업에 앞서 준법투쟁을 벌이고 있다. 민노총도 이에 연대키로 해 산하의 병원노조연맹과 금속노조연맹의 개별사업장 노조들은 이미 파업결의를 해놓고 냉각기간이 끝나기를 기다리고있는 상태다. H그룹 K상무는 18일 "수출이 줄어드는 등 경기하강세가 뚜렷한 상황에서노사관계까지 흔들리고 있어 사업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안정적이었던 노사관계가 왜 갑자기 악화되고 있는가. 재계 공통적인 목소리는 그 책임을 정부쪽에 돌리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개혁 일정을 앞두고 노동계가 "힘겨루기"에 나선 때문이지만 정부가 노사관계 개혁발표 시기를 잘못 선택했다는 것이다. S그룹의 K이사는 "하필 전국 사업장의 임.단협이 집중되는 4월 중순에 개혁안을 발표한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근로자들의 욕구가 한창 분출될때를 잡아 개혁안을 발표한 것을 이해할 수없다는 것이다. 전경련의 한 임원도 "과연 경기가 하강국면에 들어서는 시점에서 노사관계개혁이 그렇게 시기를 다툴 일이었느냐는 의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내 노사관계가 이제까지 대부분 기업의 희생을 전제로 했던 것에 비추면기업의 "지원사격" 능력이 한계에 달했을 때 노사관계를 개혁하려고 달려든것은 너무 성급했다는 주장이다. 추진방식도 결과적으로 노사관계 불안요인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이다. "개혁"은 그 성격상 "속전속결" 방식을 택해야 하는데 "시간을 갖고 천천히각계의 의견을 두루 듣는" 방식을 택했으니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또 노사관계개혁의 핵심인 노동법개정 방향에 대해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이라는 원론으로 문을 열어 놓음으로써노동계의 "오해"를 초래했다는 설명이다. 이미 민노총 계열의 사업장들은 노조 정치활동 제3자 개입 복수노조 인정 등이 완전히 보장된 것으로 기정 사실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핵심 조항 뿐만이 아니다. 구미에 있는 C사의 L전무는 "예년에 사내 복지개선에 집중됐던 단체협상 요구안이 올해는 전국적인 공통요구 사항으로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생산직월급제 근로시간단축 등 "고정 메뉴"외에 근무중 조합활동 보장 작업중지권 경영권.인사권참여 고용안정 등 개별 사업장으로서는들어주기 어려운 요구들이 "공통 메뉴"로 등장했다는 것. 정부의 노사관계 개혁이 일으킨 부작용은 또 있다. 노사 당사자들의 과민반응을 유도했다는 점이다. 경총 관계자는 "노동계가 자신들의 주장을 노사개혁에 반영시키기 위해 "오버 액션"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공공사업장 노조들이 "별 이슈도 없는데" 20일부터 연대 파업키로 한 것도이런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머릿수"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80년대 말의 상황이 재현됐다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정부가 "설익은" 노사관계구상을 내놓아 노사관계를 오히려 악화시켰다는 불만이다. 물론 노사관계 개혁에는 진통이 없을 수 없다. 문제는 선의에서 시작된 노사관계 개혁 논의가 현실적으로는 "노사관계 악화"라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데 있다. 재계 관계자는 "문민정부의 개혁이 "의도는 좋았으나 비현실적이었던" 개혁으로 끝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최소한 구체적인 개혁 프로그램이 나오기 전까지는 반드시 기존의 법 질서를 지켜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경영안정책 마련에 대한 절박한 심정을 갖고 있는 "사용자들의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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