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81) 제3부 대옥과 보채, 영국부로 오다 (8)

바로 그때였다.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시녀가 들어와 비씩 웃으며 아뢰었다. "보옥 도련님이 오십니다" 대옥은 보옥에 대해 왕부인에게서 들은 말이 있는지라 바짝 긴장하며 호기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시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앳된 귀공자 한 사람이 방으로 성큼 들어섰다. "아" 대옥은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이상한 일도 다 있구나, 어디서 꼭 본 얼굴이야. 왜 이리 눈에 익을까" 대옥은 고객을 갸우뚱하며 보옥에게서 시선을 뗄 줄 몰랐다. 머리에 쓴 자금관, 이마를 두른 황금빛 머리띠, 나비떼를 수놓은 비단도포, 꽃 모양의 술이 달린 허리띠, 여덟 개의 동그라미 무늬가 박인 마고자, 하얀 바닥을 댄 검정 비단 장화. 그 모든 것들보다 더욱 대옥의 시선을 끈 것은 뿔 없는 용을 새긴 금목걸이에 오색 비단실로 매단 예쁜 옥구슬이었다. "저게 바로 보옥 오빠가 태어날 때 입에 물고 왔다는 그 구슬이구나" 대옥은 그 옥구슬을 한번 살펴보고 만져보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왕부인이 보옥을 멀리하라고 경계한 말도 그 순간에는 그만 잊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옥의 얼굴이 대옥의 마음을 사로잡고 말았다. "할머님, 사당에서 돌아왔습니다" 보옥이 머리 숙여 대부인에게 인사를 올렸다. "오냐. 기특도 하지. 우선 네 에미에게 가서 인사하고 오려무나" 보옥은 대옥을 한번 슬쩍 훔쳐보고 나서 대부인이 시키는 대로어머니인 왕부인에게 인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대옥은 보옥이 방을 나갔는데도 그 훤한 얼굴이 여전히 방을 비추고 있는 듯이 여겨졌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시가 한 수 흘러나왔다. 팔월 보름달 같은 얼굴, 봄날 새벽에 피는 꽃 같은 살결, 칼로 살짝 벤 듯한 귀밑머리, 먹으로 그린 듯한 까만 눈썹, 복숭아 꽃잎 같은 양쪽 뺨, 가을날 호수 같은 눈동자, 저분은 비록 성을 낼 때도 웃는 듯하고 눈을 부릅뜰 때도 정이 넘치리라, 보옥은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린 후 다시 할머니 대부인이 있는 곳으로 왔다. 그런데 어느새 옷을 갈아입었는지 차림새가 달라져 있었다. 대부인이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벌써 옷을 갈아있었구나. 여기 이 손님에게 인사도 하기 전에. 자, 네 누이다. 인사해라"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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