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9일자) 통화팽창속 금리폭등 방관할일 아니다

지난해말부터 시작된 자금수급불안이 새해 들어서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있다. 은행들은 지준채우기에 급급하고 투금사들은 자금부족으로 타입대를 쓰기 일보직전까지 몰린 실정이다. 자금사정이 이렇다 보니 하루짜리 콜금리가 법정상한선인 연 25%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3년만기 회사채유통수익률도 2년4개월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연 15.20%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한은은 만기가 된 환매채(RP) 1조원을 현금상환하고 은행보유 국공채매입을 통해 2조원을 공급하는 등 3조원 규모의 자금을 긴급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금리안정과 자금수급원활에 얼마나 기여할지 의심스럽다. 최근의 자금시장사정은 가히 대란상태라고 할만하다. 얼마전 제일은행이 지준부족으로 한은으로부터 벌칙성 자금인 유동성조절( B )자금을 지원받았으며 다른 시중은행이나 특수은행도 지준채우기에 급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제2금융권인 투금사의 경우 회사당 평균 300억~400억원씩 모두 약1조원의 자금이 부족하며 일부에서는 콜자금을 끌어오기 위해 꺾기등을 통해 콜금리를 5%정도 높여준다는 소문까지 돌고있다. 자금사정이 이지경이 된 까닭은 부가가치세납부,설자금수요등으로 자금수요는 엄청난데 비해 총통화증가율이 19%대여서 통화당국이 돈줄을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금부족현상이 심각해지자 상대적으로 자금사정이 좋은 대기업들마저 당좌대월을 일으켜 자금을 미리 확보하는등 자금가수요마저 가세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뒤늦게 당좌금리를 올렸으나 이미 엄청난 돈이 풀린 상태로 시중금리만 올린 꼴이 되고 말았다. 이밖에도 최근 멕시코 페소화의 폭락,일본관서지방의 대지진 등으로 국제금융시장이 흔들리고 미국의 잇따른 금리인상으로 해외자금의 차입조건이 나빠진 탓도 있다. 경기확장국면이 계속되고 기업의 설비투자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데 안팎으로 자금수급여건이 급격하게 나빠지자 심리적인 위축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자금시장불안이 반드시 자금수요가 지나치게 많거나 자금공급이 모자라기 때문은 아니다. 총통화증가율이 19%대에 이를 정도로 시중유동성이 풍부한데 돈을 구하기 어렵다는 현실은 우리의 자금시장및 통화관리체제에 큰 문제가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우선 통화관리지표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왜곡되어 있는 것이 큰 문제다. 통화관리의 기본지표인 총통화( M 2 )에는 신탁.CD 등이 포함되지 않아 시중유동성의 30%정도밖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문제가 지적된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나 특히 지난 몇햇동안 신탁.CD 등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 지표와 현실의 괴리문제가 훨씬 심해졌다. 또한 설 추석 연말 등 계절적으로 자금수요가 몰리는 시기를 고려하지 않고 총통화증가율 위주로 통화관리를 하다보니 해마다 이때쯤이면 초과자금수요로 시중금리가 들먹이는 것도 해묵은 현상이다. 이밖에도 최근 한은이 은행돈을 빌려 가입한 약 1조5,000억원의 공모주청약저축을 예대상계하도록 지시한데서 알수 있듯이 통화수위에는 허수가 끼여 실제이상으로 과장된 점도 있다. 하지만 기업대출과는 달리 가계대출은 한번 풀린 뒤에는 환수하기가 어려우며 지속적으로 통화수위를 높이는 성향이 있는데 이는 한국통신 주식입찰과열때 풀린 돈이 아직도 환수되지 않은 사실로 입증된다. 결국 지금의 자금파동은 일시적인 자금수급의 불균형때문이 아니라 통화관리체제및 자금중개기능의 구조적인 취약점 때문이라고 할수 있다. 자금파동과 금리불안을 더이상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통화관리체제를개혁하고 자금시장을 효율적으로 뜯어 고쳐야 한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하지않고 사정이 급하게 되면 RP로 묶은 돈을 풀어주거나 지준부족을 일으킨 은행에 유동성조절자금을 대주는 눈감고 아옹하는 식의 미봉책을 언제까지나 계속할수는 없다. 이를위해 먼저 통화관리지표를 총통화대신 총유동성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유동성과 안정성이 높은 다양한 금융상품이 경쟁적으로 개발되고 있는 요즈음 통화관리대상을 지나치게 좁게 잡는 것은 더이상 곤란하다. 물론 총유동성이 통제하기 어려워 통화지표로 이용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점은 있으나 결정적인 흠은 아니다. 다음으로 금리의 자금수급조절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금리자유화에도 불구하고 정책당국의 시장개입은 여전하며 그 결과 금리등락은 실물경제의 흐름을 사전조정한다기 보다는 사후적인 표시기능에 머물고 있다. 이대로 가면 90년대초 석유화학과 주택건설에 대한 과속투자로 비롯된 고금리시대가 되풀이될까 걱정된다. 마지막으로 지나치게 높은 지급준비율을 낮추고 비생산적인 저축캠페인이나 편법대출을 막아 숫자상으로만 통화수위가 높아지지 않게 하는 한편 금융기관의 자금중개결과에 대해서는 엄격한 책임을 지도록 해야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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