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호안 미로의 '새'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호안 미로(1893~1983)는 현실에는 없는 상상의 세계를 다양한 기호와 색깔을 동원해 생생하고 영롱하게 화면에 옮겼다. 피레네산맥과 지중해가 인접한 카탈루냐주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그는 1924년 프랑스 시인 앙드레 브르통, 루이 아라공, 폴 엘뤼아르 등과 어울리며 작품에 초현실적인 요소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스페인 화가 파울 클레와 러시아 추상미술의 선구자 바실리 칸딘스키의 영향을 받은 그의 미학은 구상의 수법에서 떨어져 나와 많은 기호들의 세계 속에서 전개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여성, 새 같은 소재를 즐겨 사용하기도 했다.

1975년 작업한 이 그림은 검은색 잉크로 낙서처럼 새를 그린 작품이다. 선과 희미하게 번진 몇 개의 색점으로 빛이 만들어내는 비사실적인 공간 위에 새의 이미지를 하나의 기호로 응축했다. 마치 아이가 장난스럽게 그린 낙서나 무의식중에 떨어뜨린 수채 물감처럼 새라는 모티프를 알쏭달쏭한 기호로 은유해 천진난만한 미감을 더했다. 절제된 감성으로 이미지를 파편화하고, 자유분방한 검은 선을 활용한 화면에서는 부싯돌처럼 야릇한 빛이 새어 나온다. 단순하고 경쾌하며 자유분방한 구성이 돋보이는 이 그림은 미리 구상한 작품이라기보다 그리는 과정에서 이미지를 창조한 것으로, 미로의 독특한 작업 방식을 엿볼 수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