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의 인기 제품 ‘디오니소스’ 핸드백.
구찌의 인기 제품 ‘디오니소스’ 핸드백.
판매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던 구찌는 2015년부터 파격의 길을 걸었다. 우아한 디자인을 내던졌다. 촌스러워 보일 수 있는 화려한 꽃무늬를 제품에 새겨넣었다. 이상한 디자인의 슬리퍼도 팔기 시작했다. 고상하고 격조 높은 디자인 등 ‘명품스러움’을 던져버렸다.

온라인 판매에도 적극 나섰다. 다른 명품업체들은 희소성이 떨어진다며 온라인 판매를 기피한 것과 반대의 길을 갔다. 젊은이들 사이에 ‘구찌는 튀는 것을 좋아하는 괴짜(Geeks)들의 브랜드’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괴짜 명품’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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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구찌를 침체의 늪에서 구해냈다. 영국 패션전문지 비즈니스오브패션(BoF)은 올해 2분기 글로벌 명품 시장에서 구찌가 가장 많이 팔린 브랜드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1분기에는 3위였다. BoF는 전 세계 1만2000개 브랜드의 400만 개 제품, 6500만 명의 소비자 정보를 분석했다. 수량 기준으로 가장 많이 팔린 10개 제품 중 4개가 구찌 제품이었다. 개별 품목 중 1위는 구찌의 ‘GG블룸 슈프림 슬라이드 샌들’(사진)이었다. 꽃무늬가 들어간 슬리퍼다. GG로고 벨트와 꽃무늬 스니커즈 등도 10위권에 들었다.

구찌의 변화를 이끈 인물은 알레산드로 미켈레 크리에이티브디렉터(CD)다. 구찌는 2015년 액세서리 사업부의 무명 디자이너인 미켈레를 CD로 발탁했다. 이 무명의 디자이너는 반짝이는 고가의 슈트, 드레스가 아니라 꽃무늬 스니커즈와 블로퍼(뒤축이 없고 굽이 낮은 구두)를 내놓으며 명품업계를 흔들었다. 옷과 가방에는 휘황찬란한 꽃과 동물, 곤충의 이미지를 잔뜩 넣었다. 구찌는 안감에 털이 달린 블로퍼를 시작으로 스니커즈와 디오니소스 핸드백 등을 잇달아 히트시켰다. 20~30대가 꼭 갖고 싶어하는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톰 포드 신화의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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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레의 구찌는 올해 상반기 9억700만유로(약 1조22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작년보다 69%나 증가했다. 젊어진 디자인과 온라인 전용 제품을 내놓는 등 젊은 마케팅이 거둔 성과다. 명품 소비층이 젊어지고 있는 흐름에 구찌가 올라탄 셈이다. BoF는 2025년까지 35세 이하의 젊은 층이 명품업계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미켈레의 구찌’는 1990년대 ‘톰 포드의 구찌’와 닮았다. 구찌는 1990년대 어려움에 처하자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포드를 1994년 CD로 발탁해 부활의 계기를 마련했다. 포드가 2002년 발탁해 구찌로 데려온 인물이 미켈레다. 패션 전문지 스타일캐스터는 “미켈레가 신발과 가방 등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실력을 키워온 데다 중성적 디자인, 빈티지하고 화려한 패턴, 위트 있는 감각 등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미켈레는 지난해 영국 패션협회가 발표하는 ‘2015 인터내셔널 디자이너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새로워진 발렌시아가도 약진

올해 2분기 ‘가장 핫한 명품 10위’에는 구찌뿐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명품 브랜드들이 이름을 올렸다. 2위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높은 신발로 인기를 끈 카니예 웨스트 이지, 3위는 새로운 가방 디자인을 대거 선보인 발렌시아가가 차지했다. 베트멍(4위), 지방시(5위), 발렌티노(6위), Y-3(7위), 프라다(8위) 등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브랜드가 높은 순위에 올랐다.

의류보다는 신발의 인기가 높은 명품업계 트렌드도 순위에 반영됐다. 가장 많이 팔린 상위 10개 품목 가운데 구찌의 슬리퍼와 스니커즈, 생 로랑의 펌프스, 지방시의 슬리퍼, 꼼데가르송과 커먼프로젝트의 스니커즈 등 6개 제품이 신발류였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