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손가락보다 작은 고무 인형 숍킨스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여아 장난감이다. 식료품 가게나 백화점에서 파는 컵케이크, 아이스크림 등 아기자기한 상품을 본떠 만들었다. ‘소꿉’을 모으는 재미를 주겠다는 아이디어가 적중했다. 2014년 첫선을 보인 숍킨스는 세계 80개국에서 2억4000만여개가 팔렸다. 마텔, 레고 등 거대 기업이 지배하던 장난감 시장에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숍킨스를 시장에 내놓은 건 호주의 장난감 회사 무스(Moose Toys)다. 매니 스툴 무스 최고경영자(CEO)는 2000년 파산 직전의 회사를 인수해 17년 만에 7200% 성장을 이뤄냈다. 숍킨스의 성공으로 스툴 CEO는 지난달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의 ‘억만장자 리스트’에 올랐다. 그의 자산은 14억달러(약 1조6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세계 1468위, 호주 23위의 부자가 된 것이다.

전쟁 난민에서 호주 23위 부호로

스툴 CEO는 1949년 독일 전쟁난민수용소에서 태어났다. 홀로코스트(유대인 집단 학살)에서 살아남은 부모와 함께 생후 7개월 때 호주로 이민 갔다. 그들 가족은 호주 퍼스에서 북쪽으로 100㎞ 떨어진 난민캠프에서 몇 년간 살았다. 이후에도 한 집에 세 가족이 함께 살아야 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스툴은 의사나 변호사가 되길 원한 부모의 뜻과는 달리 기업가의 길을 택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1974년 스칸센이란 선물용 유리제품 제조업체를 창업했다. 이 회사가 1993년 호주증권거래소에 상장되면서 스툴은 무스를 인수할 만한 자본을 마련할 수 있었다. 스툴 CEO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경험 없이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기회라고 느끼는 순간마다 힘들게 결정을 내린 것이 나만의 성공 노하우가 됐다”고 말했다.

2000년 그는 스칸센 지분을 모두 정리하고 파산 직전인 장난감 회사 무스를 인수했다. 당시 무스는 매출 400만달러의 중소기업이었다. 스툴은 무스의 CEO가 된 첫 3년 동안은 직접 포장과 판매까지 도맡았다.

2014년 출시한 숍킨스가 미국 초등학생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무스 매출은 2015년 6억달러까지 늘어났다. 숍킨스는 지난해 새로운 시리즈의 영화를 개봉한 스타워즈 관련 장난감, 너프의 장난감 총에 이어 미국 완구시장에서 매출 기준 3위를 차지했다. 무스가 장난감 기업이 아니라 ‘크리에이티브 허브’기 때문에 가능했던 성과라고 스툴은 말했다. 숍킨스는 원하는 아이템을 골라 사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 골라 담은 인형 세트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판매한다. 일종의 ‘뽑기’ 방식이다. 겹치는 아이템이 나오면 친구들끼리 바꾸거나 새로운 아이템을 갖기 위해서 계속 사기도 한다.

“어린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혁신 DNA”

[Global CEO & Issue focus] 호주 장난감 회사 '무스'  매니 스툴 최고경영자, 파산 직전의 회사 사들여 손가락 크기 인형 '숍킨스' 출시
초콜릿칩 쿠키 모양의 ‘쿠키 쿠키(Kooky Cookie), 양배추 모양의 크리스피 레터스(Kris P. Lettuce), 브로콜리 모양의 로킹 브록(Rockin Broc.) 등 약 3㎝ 크기의 숍킨스는 미국 초등학생의 수집 욕구를 제대로 건드렸다. 어린 여학생들은 무작위로 구성된 독특한 이름의 캐릭터 인형 세트를 구입해 서로 바꾸기도 하면서 150여개에 달하는 숍킨스를 모은다. 캐릭터인형 12개 세트 가격은 10달러 안팎이다. 1분 정도의 짧은 애니메이션도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에서 인기다. 숍킨스 캐릭터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은 조회수가 수십만회에 달한다.

스툴 CEO는 지난해 호주 기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글로벌 컨설팅업체 언스트앤영(EY)이 선정한 ‘올해의 세계 기업인’에 뽑혔다. 재무적 성공, 혁신성, 성공적인 글로벌 진출 등이 선정 이유로 꼽혔다. 그는 수상 소감을 통해 “무스는 혁신 유전자(DNA)로 어린이들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는 회사”라며 “이런 목표에 집중했기 때문에 빠른 성장이 가능했고 큰 위기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항상 좋은 일만 있던 건 아니다. 2007년 회사 문을 닫을 뻔한 위기를 겪었다. 무스가 생산한 장난감에 안전성 허가를 받지 않은 마약류의 화학물질이 사용된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일부 제품에서 해당 물질이 검출됐지만 강도 높은 조사를 거쳐 이 과정에 본사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채권자들과의 협상을 통해 가까스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문제가 된 빈디즈 크래프트 장난감은 전량 회수했다.

자선가로서의 꿈

스툴 CEO는 존경하는 기업인으로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를 꼽는다. 그는 이민자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점부터 카네기와 비슷하다. 카네기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학력이라곤 초등학교를 다닌 게 전부지만 미국에서 강철 대량 생산과 유통을 실현시킨 입지전적 인물이다.

스툴 CEO는 미국 영국에 2500여개 도서관을 비롯해 공연장(카네기홀), 대학(현 카네기멜론대)을 건립한 ‘자선가로서의 카네기’를 닮고 싶다고 말한다. 그의 아버지도 본보기다. 장식장을 만드는 목수였던 스툴의 아버지는 난민캠프에 살던 어려운 시절, 호주 퍼스에 신설된 유대인 학교에 1주일간 번 돈 전부를 기부하기도 했다. 그는 “사업가로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남은 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스툴 CEO가 자선사업을 위해서 무스에서 퇴직하는 것은 아직은 먼 미래의 일로 보인다. 그는 지금 현재 무스가 더 크게 성공할 수 있도록 이끄는 원동력이다. 스툴 CEO는 “내가 즐기고 있는 한 오래 머물 것이고, 지금 나는 제대로 경영을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추가영 기자 gyc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