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상법은 기업규제법이 될 수 없다
상법개정안이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기업 옥죄기’ 분위기에 편승해 졸속 처리될 운명에 처해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상법개정안이 통과된다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힘든 나라가 될 것이 틀림없고, 해외 투기자본의 놀이터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반(反)기업 정서가 높아지면서 재벌 개혁을 명분으로 발의된 상법개정안은 20여개에 달한다. 오너의 전횡을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상법 개정이 추진된다고 하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탁상공론일 뿐이다. 이번에 논의되고 있는 상법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전자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임과 대주주 의결권 3%로 제한, 집중투표제 의무화, 우리사주조합의 사외이사 후보 추천권 부여 등이다.

전자투표제도는 회사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비용절감 등 효율성경제성을 높일 수 있으나 현행 상법에서도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를 활성화하기 위한 제도적 수단으로 ‘서면투표제’, ‘의결권대리행사’ 등 여러 장치가 마련돼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본시장법상 그림자 투표제가 폐지 유예돼 상장회사가 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독려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 제도를 의무화해 기업에 부담을 줄 필요는 없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에서는 ‘이사회 결의’ 등 회사자율로 전자투표제도를 채택할 수 있도록 하고 의무화하지는 않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의 경우 ‘포이즌 필’ 같은 경영권 보호장치는 외면하면서 소액주주들의 권익만 과도하게 보호하는 것으로 균형이 맞지 않는다. 다중대표소송을 도입할 경우 한국은 세계 최초로 이 제도를 입법화하는 나라가 된다. 미국도 일부 판례에서만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제도를 새로 채택할 경우 기업의 경영권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감사위원의 강제 분리선출은 최대주주의 이사 선임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외국계 펀드가 이사회 구성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특히,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되면 정부가 적극 권장하던 지주회사 체제가 역차별 받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집중투표제도는 이사선임에 관한 일종의 비례대표제인데 이 제도를 도입하면 이사회의 효율적인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고 각각 소수주주와 최대주주를 대표하는 이사가 이사회에 공존해 당파적인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사주조합의 사외이사 후보추천권은 사외이사 선임 시 우리사주조합 소액주주 추천 각 1인을 의무 선임토록 하는 내용이다. 우리사주조합에 사외이사 선임권을 주는 것은 특정 집단에 속하는 주주에게만 특혜를 주는 것으로 회사법의 기본원칙인 주주평등 원칙에 위배된다.

상법은 결코 기업규제법이 아니다. 기업을 옥죄는 법이 아니라, 기업활동을 원활하게 하고 기업을 유지발전시키는 데 기본이념이 있다. 지금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상법개정안은 다분히 정치적 색채를 띠고 있다. 정치인들은 인기영합주의에 매몰돼 기업을 뛰게 만들기는커녕 기업의 발목을 잡는 데 몰두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2013년 입법예고됐던 기업지배구조 상법개정이 이미 2006년 상법개정안과 2008년 상법개정안이 제출됐을 때 치열하게 논쟁하던 사항들이고 문제점이 너무 많아 폐기됐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논란과 각계 의견을 거쳐 해방 이후 최대 규모인 250여개의 조문을 개정한 새로운 회사법이 시행된 지도 얼마 안 된 시점에서 걸핏하면 기업 때리기와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또다시 상법 개정에 관한 논쟁을 재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입법자들은 기업가정신을 고취하고 더욱 과감한 기업 투자를 촉진하려는 데 있는 상법의 본령을 다시금 생각해볼 때다.

최완진 <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