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력’에 의한 살인 사건이 또 발생했다. 한 30대 여성이 전 남자친구한테 맞아 끝내 숨을 거뒀다. 경찰의 안일한 대응에 대한 비판과 함께 데이트 폭력을 방지할 수 있는 법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19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9일 오후 5시반께 서울 논현동 빌라 주차장에서 이모씨(35)가 전 남자친구 강모씨(33)에게 맞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13일 끝내 숨을 거뒀다.

사건 당일 이씨는 강씨가 자신의 집에 허락 없이 들어왔다며 경찰에 신고했던 것으로 드러나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당시 경찰은 등본에 올라 있는 동거인이라서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강씨가 재물손괴죄로 벌금을 미납했던 기록을 근거로 파출소로 데려갔지만 10만원 벌금을 내자 바로 풀어줬다. 이후 강씨는 다시 여자친구가 사는 빌라로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 대응이 안일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찰은 현장에서 강씨에게 조치를 취할 근거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강씨는 이씨의 등본에 올라 있는 동거인이었기 때문에 주거침입죄로 강씨를 붙잡을 만한 명분이 없었다”고 말했다. 폭행으로 신고했어도 부부 사이에 벌어진 폭력 사건은 가정폭력범죄 특례법에 따라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긴급 임시조치’로 격리조치를 할 수 있지만 데이트 폭력의 경우 관련 규정이 없다. 경찰관직무집행법(경직법) 4조는 술 취한 사람이나 정신착란을 일으킨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재산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보호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찰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데이트 폭력은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연인으로부터 살해 당한 사람은 233명에 달한다. 폭행, 상해치사를 포함하면 모두 296명이 연인에게 목숨을 잃었다. 연인을 폭행해 검거된 인원은 1만4609명이다.

경직법을 개정하거나 관련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말 뿐이었다. 지난해 2월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천 남동구갑)은 ‘데이트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을 발의했다. 데이트폭력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의 판단으로 가해자를 격리시킬 수 있는 ‘긴급 임시조치’ 규정이 들어 있어 데이트폭력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의조차 되지 못한 채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