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관람객들이 김우현 궁궐길라잡이의 설명을 듣고 있다.
덕수궁 관람객들이 김우현 궁궐길라잡이의 설명을 듣고 있다.
서울에 있는 5대 궁궐의 외형은 물론 속살까지 알려고 하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문화재의 가치와 역사적인 의미를 소개하는 문화해설사의 인기가 높아지는 추세다. 평일에 해설하는 사람은 문화재청 소속이고 휴일에는 나처럼 자원봉사하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이 중 일요일에 안내하는 사람들이 ‘우리문화숨결’이란 비영리 민간단체 소속이다. ‘궁궐길라잡이’라고 일컬어진다.

이들이 역사나 궁궐건축을 전공한 사람이라고 보면 오산이다. 그저 문화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3개월의 실내교육과 8개월의 교육, 현장 실습을 거쳐 궁궐을 안내하는 자격이 부여된다.

작열하는 태양볕 및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매미 소리와 경쟁해야 하는 여름도, 견디기 힘들 정도의 매서운 추위로 손발을 움직이기 어려운 겨울도 먼 곳에서 찾아와 우리 문화재의 매력을 알고자 하는 이들이 있어서 힘든 줄도 모르고 해설을 한다. 해설 내내 “간략하게 하고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초롱초롱한 관람객의 눈망울과 호응에 나도 모르게 열정적으로 해설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11년째 궁궐에서 해설을 하고 있다.

궁궐길라잡이를 양성하는 우리문화단체는 1999년 민간 주도 시민참여형 조직으로 출발했다. 궁궐을 해설 없이 둘러보는 것은 사실 오래된 빈 집을 구경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전각을 보면 이해도가 크게 높아진다. 이런 효과에 주목, 문화재에 해설이란 개념을 도입하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문화재, 그 중에서도 궁궐 해설을 시작했다.

해설하는 사람들의 연령도 10대 후반에서 70대까지 다양하다. 직업도 대기업 임원, 교사, 대학생, 주부, 갓 고교를 졸업한 이들도 있다. 우리 단체에 속한 400여명의 해설사는 주중에는 각자 자기가 속한 영역에서 최선을 다한 뒤 매주 일요일에는 우리문화유산 보존과 그 가치를 널리 전하기 위해 배정된 궁궐에서 열심히 활약한다. 우리는 2004년 미국대사관저 옆에 공지로 남아 있는 덕수궁 선원전터에 미국이 대사관저를 신축하려 했을 때 시민들에게 이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알려 계획 자체를 무산시킨 일이 있다. 정부가 미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 우왕좌왕할 때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낸 것에 대해 궁궐길라잡이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궁궐길라잡이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관람객을 만난다. 해설에 나서기 앞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의 산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우리가 보고 있는 덕수궁은 전성기의 3분의 1만 간직한 곳으로 100년 전으로 돌아갔다고 상상하면서 둘러봤으면 한다”고 말한다.

통상 덕수궁 안내판에서 출발한다. 대한문~금천교~광명문터~중화문~중화전~석어당~덕홍전~함녕전~정관헌~즉조당~준명당~석조전까지 2시간30분가량 해설을 진행한다.

어느날 친구인 듯한 70대 할머니들이 오셨다. 끝까지 경청해 줘 정말 고마웠다. 해설 후 할머니들과 말씀을 나눴는데 그동안 여러 일로 바빠서 궁궐 나들이 할 일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여고 시절도 그립고 해서 궁궐에 나들이 왔다고 했다. 할머니들은 “젊었을 때만 해도 덕수궁이 제대로 복원되지 않았고, 제재하는 사람도 없어서 전각 출입이 자유로웠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해설을 잘 들었다. 언제 다시 궁궐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며 눈물을 글썽거려 나도 코 끝이 찡했다.

고종황제가 어지러운 국사로 머리가 어지러울 때 커피와 서양음악을 즐기며 심신을 안정시키던 정관헌 에피소드도 들려준다. 이곳에서 선을 보고 결혼에 이른 커플을 만나기도 한다.

궁궐은 왕이 국사를 논하던 공간인 동시에 우리 부모와 우리, 자녀들의 꿈과 추억이 넘쳐나는 곳이다. 이런 이유로 궁궐길라잡이들은 일요일이면 덕수궁 안내판에 어김없이 나타나 시민들에게 친절히 궁궐을 안내한다. 올겨울도 유난히 추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궁궐을 찾는 관람객을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다. 궁궐의 역사적 가치를 전달하고 보존하는 궁궐길라잡이로서 일요일 출근길은 늘 즐겁다.

우리문화숨결 궁궐길라잡이 9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