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칼럼] 국정의 '비잔틴 장애' 극복하려면
컴퓨터과학의 노벨상에 해당하는 튜링(Turing)상은 2013년 미국 레슬리 램포트에게 돌아갔다. 그는 동료 두 사람과 1982년 발표한 논문에서 ‘비잔틴 장군들의 문제’라는 명제를 제기했다.

비잔틴제국 군부대들이 지리적으로 격리된 상태에서 적군의 성을 포위하고 있는 가상의 시나리오는 이렇다. 함께 공격하면 성을 함락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참패할 수 있기에 장군(컴퓨터)들은 전령(디지털통신)을 통해 교신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장군은 배신할 수도 있고, 다른 장군을 시기한 나머지 공격이 실패하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전령이 적군에게 붙잡혀 메시지 전달을 못 하거나 배신할 가능성 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공격이 성공하려면 충직한 장군은 얼마나 필요하며, 어떤 규칙에 따라 교신해야 하는지 램포트 등이 밝힌 것이다.

그들이 염두에 둔 건 네트워크에 연계돼 있지만 분산된 컴퓨터들의 엇박자 신호에 따른 장애의 극복, 곧 비잔틴 ‘장애 허용(fault tolerance)’이었다. 꼭 전부는 아니라도 대부분 컴퓨터가 긴밀하게 공조하고 일관되게 작동하는 시스템 구축이 그 취지다.

‘비잔틴 장애’는 2005년 미국에서 건조된 버지니아급 잠수함 내구시험 때 간헐적으로 관측됐다. 2010년 도요타자동차 리콜이나 최근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도 크게 보면 그 단면일 수 있다. 동인 김성일과 서인 황윤길이 선조에게 왜군 동향을 상반되게 보고한 점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우리 국정에는 ‘비잔틴 장애’의 조짐이 완연하다. 여당과 야당의 고질적인 정쟁과 그에 따른 국정 표류는 논외로 하자. 국정감사에서 불거진 의혹들에 비춰 문제가 생긴 지휘관이나 전령의 수가 장애 허용범위를 넘어선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 문제는 또 수사 중이니 기다려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수출이 이처럼 2년 연속 줄어드는 초유의 상황이면 무역투자진흥회의라도 자주 열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상 34년 만에 현 정부에서 부활된 회의가 아닌가. 그렇게 힘을 싣고 출범한 규제개혁장관회의는 어떤가. 집권 4년차 후반인데도 겨우 다섯 차례밖에 열리지 않았다.

물론 매사에 정부가 나서는 방식은 산업화시대 유산이다. 컨트롤타워나 정부 대책을 채근하는 것이 능사도 아니다. 그러나 구조개혁만큼은 정부가 고삐를 잡아야 한다. 4·13 총선 등으로 올해 우리는 구조개혁에 진도를 내지 못했다. 이미 발표한 대책이 얼마나 이행되고 있는지도 챙겨야 한다. 착실히 집행하고 성과를 평가하며 시행착오나 오류를 바로잡는 후속조치가 만만치 않다. 이런 과제들을 묶어 한 달에 한 번 정도 대통령이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했으면 한다.

단임 대통령의 잔여 임기가 줄어들수록 관료들의 정권에 대한 충성심은 약해진다. 실무자 입장에선 과객에 불과한 대통령이나 장관보다 소속 부처와 직근 상사가 더 소중하다. 소속 부처의 이해에 반하는 개혁에 발 벗고 나설 리 만무하다. 그 필요성은 인정해도 승산이 희박한데 품이 많이 드는 기득권 재편과제도 뒤로 미루기 십상이다. ‘눈치 보기’가 늘어나고 때론 ‘줄 서(대)기’도 서슴지 않는다. 청와대가 나서서 독전할 수밖에 없다.

‘비잔틴 장애’를 극복하는 요체는 뜻밖에 단순하다. △기본전략 정립 △3분의 2 이상 장군들의 행동 일치 △왜곡할 수 없도록 서명 확보 △배신을 당사자로 국한 등이 그것이다. 이들을 국정에 대입하면 난국을 타개할 길이 보인다. 일관된 구조개혁, 임기 말 관료 장악, 특별감찰관 등 통제시스템 확립, 일탈한 공직자나 측근 엄벌 등을 통해 하찮은 장애에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 국정’을 기대한다.

박재완 < 성균관대 교수·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