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농업·화학회사가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인수합병(M&A)에 유럽연합(EU)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11일(현지시간) 미국 다우케미칼과 듀폰의 1220억달러(약 134조원)짜리 합병 계획안이 제초제, 종자, 특정 석유화학제품 부문 경쟁을 저해하는지 전면적으로 조사한다고 발표했다.

다우케미칼과 듀폰은 둘 다 미국 화학회사지만 유럽사업 비중이 상당하기 때문에 EU의 판단이 중요하다. EU가 조사를 통해 반(反)독점 규정 위반이라고 판단하면 합병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FT는 EU의 판단에 따라 중국화공(켐차이나)의 440억달러짜리 스위스 종자회사 신젠타 인수, 독일 바이엘의 640억달러짜리 미국 몬산토 인수 추진 등이 줄줄이 무산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3개 M&A가 모두 성사되면 합병 후 3개 통합회사가 세계 농화학시장의 약 70%를 차지한다. 시장 독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베스타게르 위원은 다우케미칼·듀폰 합병 조사 방침을 밝히며 “농가의 생계는 경쟁력있는 가격에 종자와 곡물을 확보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며 “합병 계획이 (독점으로 인한)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거나 이 분야 혁신을 저해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우케미칼과 듀폰은 합병 후 조직을 소재·특수제품·농업 3개 부문으로 쪼갤 예정이다. 그러나 베스타게르 위원은 “약속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미국 법무부도 다우케미칼·듀폰 합병에 관한 반독점 문제를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EU 쪽이 좀 더 까다롭다. 전 미국연방통상위원회(FTC) 경쟁담당 정책국장인 데이비드 발토 변호사는 FT에 “EU의 반독점 판단 기준이 미국보다 더 강하고 조사 과정에서 소비자인 농부들 의견을 많이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EU의 조사로 미국과 유럽 간 갈등이 커질 수 있다고 FT는 예상했다. EU는 반독점 문제를 이유로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허니웰 인수(2001년)를 불허해 거래를 무산시켰고, 미국 보잉사의 맥도널더글러스 인수(1997년)에도 반대해 거래가 꼬이게 한 전력이 있다. EU는 오는 12월20일까지 판단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미국의 반독점 규제가 강해진 것도 복병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체제 들어 미국의 반독점 판단 기준은 전보다 훨씬 강화됐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