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독일 하노버에서 세계 최대 산업용 기자재 전시회인 ‘하노버 메세’가 열렸다. 이 전시회에서 스타로 떠오른 주인공은 1898년 설립된 독일의 로봇회사 쿠카가 제작한 팔 형태 로봇 ‘이와’. 사람처럼 컵에 맥주를 따르고, 커피도 내리고, 꽃꽂이도 능숙하게 해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쿠카 부스를 찾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레몬도 짤 수 있느냐”고 물으며 은근히 자부심을 내비쳤다.
중국에 또 뺏길라…'M&A 백기사' 찾는 독일
그런 쿠카는 불과 한 달 후 중국 자본에 넘어갈 처지였다. 가전회사 메이디(美的)가 45억유로(약 5조5000억원)에 사기로 한 것이다. 독일에서는 쿠카와 같은 중요 기술을 보유한 회사를 중국에 순순히 넘겨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메이디 대신 쿠카를 인수할 ‘백기사’를 모집하려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중국의 ‘獨기업 쇼핑’ 열풍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자본에 인수되는 독일 기업 수가 올 들어 급증하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10일 보도했다. 로봇산업 선두기업이던 쿠카와 대중에게 친숙한 세계 2위 조명회사 오스람의 발광다이오드(LED) 사업부가 중국에 넘어가면서 독일 정치권과 기업의 위기의식을 자극했다.

올 상반기 중국 기업 혹은 중국계 펀드 등 중국 자본에 인수된 독일 기업 수는 37곳에 이른다. 작년엔 상·하반기 합해 39곳이었다. 2010년까지만 해도 미미하던 중국계 자본의 독일 투자금액은 2011년 이후 수십억달러 수준으로 늘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108억달러(약 12조원)를 넘겼다. 마르틴 라이츠 로스차일드 독일지사 최고경영자(CEO)는 “상반기 독일에 투자한 해외자본 중 35~40%가 중국계”라고 분석했다.

이 중에는 쿠카 지분 10.2%(작년 말 기준)를 보유한 2대주주 메이디가 지난 5월 이후 다른 주주의 지분을 사들이느라 쓴 돈이 포함됐다. 이달 8일 기준 메이디가 보유한 쿠카 지분율은 94.55%에 이른다. 지분 100%를 취득해 쿠카를 완전한 중국 회사로 만들려는 수순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잇따르기 시작했다. 독일인인 귄터 외팅거 유럽연합(EU) 디지털부문 집행위원은 “쿠카는 유럽 디지털산업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회사”라며 유럽 자본이 쿠카를 사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경제부총리도 6월 쿠카를 유럽자본이 인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기사 나타날까 관심

유럽 자본시장에서는 지난 두 달간 쿠카를 대신 인수할 백기사의 등장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스위스의 엔지니어링회사 ABB가 나서길 바라는 사람도 있고, 쿠카 지분 10%를 보유했던 독일 기업가 프리트헬름 로 로서비스그룹 회장 등이 인수 제안을 받기도 했다고 FT는 전했다.

아직 공식적으로 나선 곳은 없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면 독일 정부가 매각을 중단하거나 뒤집을 권한은 없다. 에너지 네트워크나 방위산업 등 일부 분야에 대한 인수 시도를 막을 수 있다는 EU 차원의 규정이 있긴 하지만 쿠카는 해당하지 않는다. 메르켈 총리가 직접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으나, 이 경우 중국에 진출한 독일 기업이 중국 정부의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

쿠카 인수 자체가 뒤집힐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 하지만 독일 내 여론 악화와 정치인의 반발에 메이디는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앤디 구 메이디 부사장은 “우리는 이렇게 많은 부정적 반응을 예상치 못했다”며 “독일 내 우려를 인정하고 이 거래의 합리적인 점을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