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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BIZ School] 빈번해진 기상이변, 애그플레이션 촉발하나

입력 2016-07-14 16:09:09 | 수정 2016-07-14 19:05:49 | 지면정보 2016-07-15 B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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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Master
원자재 시장 (4) 곡물

기업형 농업 이젠 전문화
ICT 활용한 스마트팜에서 1~2개 작물만 대량 생산
기후변화로 흉작 땐 식량공급체인 단숨에 붕괴

문용주 < 글로벌마켓포커스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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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말 세계 최대 곡물거래소인 시카고시장에서 밀 가격이 부셸당 1250센트를 기록했다. 2007년 말에 비해 2개월여 만에 70% 이상 폭등했다. 소위 애그플레이션으로 불린 이상현상이었다. 애그플레이션은 농산물을 말하는 애그리컬처(agriculture)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이 조합된 신조어다.

당시 애그플레이션이 발생한 원인을 반추해 보면 기존에 보인 원인과 새로운 요인이 공존했다. 주 요인은 수요에 있었다. 공급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늘었지만 수요가 그 이상으로 증가해서 발생한 ‘풍요의 문제’였다. 경제 발전으로 육류 소비가 급속히 늘면서 사료용 수요 증가도 한몫을 담당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흔히 봐온 곡물시장에서의 식용과 사료용 수요의 양대 경쟁 구조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곡물시장에 두 가지 새로운 현상이 더해졌다. 첫째로 환경 문제가 대두하면서 바이오연료용 곡물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다. 곡물시장의 두 축에 연료용이 추가돼 3각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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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곡물시장을 요동시킨 또 하나의 요인은 투기자본의 유입이었다. 이는 곡물시장 문제일 뿐만 아니라 원자재시장 전반에 걸친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21세기 들어 원자재값이 급등하면서 주식, 채권 등 전통적인 금융상품에 비해 수익률이 높아진 원자재시장에 투기자본의 유입이 크게 늘었다. 이 자본은 원자재 수요와 무관하게 수익률에 따라 움직이며 원자재시장의 변동성을 크게 확대시켰다. 2007년 에너지시장 급등의 요인이었던 이들 자본이 2008년에 접어들면서 수익률을 좇아 농산물시장으로 유입된 것이 또 하나의 곡물 가격 급등 요인이 됐다.

그로부터 8년여가 지난 현재 곡물시장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아직까지 2008년과 같은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펴보면 우려되는 바가 크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19세기 후반 이주해 온 농부들이 대부분 밀을 경작했다. 식량 확보가 시급했기 때문이다. 초기 정착민은 새로운 정착지에서 잉여 곡물을 생산해 필요한 공산품을 구입했다. 농촌사회학에서는 이를 ‘제1차 체제’라고 부른다.

그러나 과도한 잉여 생산으로 20세기 들어 캘리포니아주 토양은 지력을 잃게 됐다. 수확량이 대폭 감소하자 많은 농가가 과실-원예 농업으로 전환했다. 육류 공급을 위한 대규모 공장식 축사도 지었다. 마침 냉장 유통, 정부의 옥수수 재배 지원정책, 철도망 같은 인프라 구축도 이어졌다. 20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농업은 제조업처럼 됐다. 이를 ‘제2차 체제’라고 부른다.

이 체제에서 미국 농업은 생산과 유통에 걸친 전 과정을 통제하는 ‘수직통합형’ 대기업이 됐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배경이 이때다. 소작농들이 기업형 농업기업에 흡수되는 농업 구조 변화의 모습이다.

20세기 후반이 되면서 기업형 농업들은 전문화를 지향하게 된다. 바로 ‘제3차 체제’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큰 규모의 단일 작물 재배가 시작이다. 이들 작물은 농약을 물처럼 줘야 생존할 수 있는 품종이다. 이런 농업생산체제가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농작물의 최적 생육환경을 제어하는 첨단농장인 ‘스마트팜’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국도 올해 모 대기업이 새만금단지에 스마트팜을 조성하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극단적 전문화가 가능한 이유는 세계 농산물 총 생산량의 80%를 책임지고 있는 품종이 옥수수, 밀, 벼, 보리, 수수, 대두, 감자, 고구마, 사탕수수, 사탕무, 바나나 등 12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세계 인류가 소비하는 총 열량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놀라운 일은 이들 모두가 이미 고대시대부터 작물화에 성공한 농작물이란 점이다. 이들 모두는 원자재상품 거래소에서 금융상품과 같이 거래되고 있는 투자 대상이다.

에번 프레이저의 《음식의 제국》을 보면 인류는 언뜻 자명해 보이는 세 가지 실수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첫째는 지구는 비옥하다는 가정이다. 그리고 인간들이 당연시하는 값싼 화학비료를 통해 이런 비옥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앞으로도 날씨가 계속 좋을 것이란 가정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한 가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한두 가지 작물만을 대량 생산하는 특화된 여러 재배지의 조합을 통해 현대 식량 공급체인이 구축됐다.

기원전 1600년께 동부 지중해 지역에서 번성한 고대 그리스 미케네 문명이 멸망한 원인은 도리아인의 침략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자연 재해나 기후 변화 같은 가설도 제시된다. 확인된 사실도 있다. 먼저 그들은 미개간지를 경작해 기른 식품의 잉여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둘째, 기후적 행운, 즉 풍작을 도운 장기간의 온화한 날씨에 의존했다. 셋째, 모든 주민의 식탁에 빵을 올리기 위해 소맥 단일 작물에 의존했다. 문제는 이들 요소 중 어느 것도 장기간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녀지는 힘을 잃었고, 기후는 변했으며, 특화된 농장은 당연히 불운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는 엘니뇨에 이어 사상 최악의 라니냐가 예상된다고 한다. 이미 프랑스를 비롯한 지역의 폭우, 30년래 최악이라는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의 가뭄 피해 등으로 농산물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보면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이유는 엇비슷하다. 그러나 불행한 가정은 그 이유가 제각각 다르다. ’ 과연 프레이저의 세 가지 가정 중 하나만이라도 어긋난다면 2008년에 이어 우리 식탁이 다시 한 번 흔들릴 가능성은 없는 걸까.

문용주 < 글로벌마켓포커스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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