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약국 앞 의약품 자판기 설치에 나서면서 유명무실해진 ‘휴일지킴이약국제(당번약국제)’가 도마에 올랐다. 휴일에 약국이 돌아가면서 문을 열도록 하는 이 제도가 시행된 지 10년째지만 원칙 없이 운영되면서 국민 불편만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지난 28일 환자가 휴일이나 심야에 쉽게 약을 살 수 있도록 약국 앞에 의약품 자판기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한 ‘약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자율이라지만…너무한 휴일 당번약국제
29일 정부와 의약업계에 따르면 휴일에 문을 열겠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문을 닫는 ‘얌체 약국’이 3~4년 전부터 큰 폭으로 늘면서 지역 주민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본지 취재 결과 26일(일요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선 휴일지킴이약국제 홈페이지(www.pharm114.or.kr)에서 당번약국으로 소개된 13곳 중 2곳(낮 12시 기준)만 문을 열었다. 영등포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씨(35)는 “세 살짜리 아들이 벌레에 물린 탓에 가려움증에 잠을 설쳐 홈페이지에 오전 9시부터 문을 연다고 안내된 집 앞 약국에 찾아갔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학생 김모씨(24)는 “지난 일요일 당번약국을 찾아봤지만 동네 주변엔 영업 중인 곳이 없었다”며 “문을 연 약국이 집에서 4㎞나 떨어져 있어 5000원짜리 약을 사기 위해 왕복 택시비로 1만원을 써야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약국들이 ‘휴일지킴이’ 역할을 포기하는 이유는 영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2012년부터 편의점 등에서도 상비약 구매가 가능해지면서 휴일에 문을 여는 약국의 매출이 크게 줄었다. 한 약사는 “휴일에 운영한다고 정부가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고 손해를 감수하면서 운영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대한약사회도 당번약국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약사회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약사 자율로 운영되는 제도”라며 “지역 약사회에 ‘운영시간을 지켜달라’ ‘지역 안배를 고르게 해달라’고 요청할 수는 있어도 강제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추진 중인 약국 앞 의약품 자판기 설치가 휴일지킴이약국제를 보완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판기에서 의약품을 구입하려면 화상통화로 약사에게 복약지도를 받아야 한다. 한 약사는 “의약계가 약물 오남용 가능성 등의 문제를 들어 반대하고 있지만 자판기가 설치되면 소비자 불편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