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캐나다 최대은행인 로열뱅크오브캐나다(RBC)의 ‘주가연계증권(ELS) 시세조종’ 의혹에 대한 증권투자자들의 집단소송을 받아들였다. 집단소송제도가 시행된 지 11년 만의 일이다. ELS는 특정 주식에 연계된 파생상품으로 연계주식의 가격이 일정 수준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면 높은 수익을 보장하도록 설계돼 있다. 해마다 수십조원어치가 팔리며 ‘국민 재테크 상품’이라는 말까지 들은 인기상품이었다.

문제는 주가가 약속한 가격 이하로 떨어져 수익금을 주지 않아도 되도록 일부 증권사들이 주가조작을 감행했다는 사실이다. ‘첫 집단소송의 피고’가 된 RBC도 그런 혐의를 받고 있다. RBC가 판 ELS는 계약만료일 장이 끝나기 불과 10분 전 주가연계 종목의 주가가 급락하는 바람에 22%의 수익을 낼 것으로 예상되던 것이 -25.4%의 큰 손실로 역전되고 말았다.

RBC가 장 마감 동시호가 10분 동안 기초자산인 SK(주) 주식을 대량 매도한 사실이 한경의 특종보도로 드러난 것이 사건이 불거진 결정적 계기였다. 금융당국은 ‘시세조종 혐의’로 이 사실을 검찰에 통보했다. 대우증권 도이치은행 BNP파리바 등 다른 금융회사들에서도 비슷한 행위가 적발됐다. 해당 금융회사들은 ELS의 수익률을 지키기 위해 첨단금융기법인 ‘델타헤징’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개별 소송의 대법 판결은 2 대 2의 결과가 나왔다.

RBC에 집단소송을 제기한 투자자는 두 명이지만 승소할 경우 비슷한 피해자 437명은 동일한 보상을 받는다. 다만 소송결과와 관계없이 지금까지 금융당국과 증권사들의 대응은 실망스럽다. 법원에서도 투자자들이 집단소송을 신청한 지 6년 만에 이를 받아들였다. 금융당국은 일찌감치 시세조종이라고 판단하고도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 주가조작이라는 죄질에 대해서라면 증권업 허가 취소 등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마땅했다. 국민들이 증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당국의 미온적인 소비자 보호에도 큰 원인이 있을 것이다.